작성일
2013.08.27
수정일
201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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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박정희부터 선데이서울까지](4) 선데이서울과 유신시대의 대중』 김성환(인문학연구소 HK교수)

『[1970 박정희부터 선데이서울까지](4) 선데이서울과 유신시대의 대중』  김성환(인문학연구소  HK교수) 20130824_경향신문_023면.jpg

[1970 박정희부터 선데이서울까지](4) 선데이서울과 유신시대의 대중

 

ㆍ독재권력 시대 억압의 탈출구, 대중의 ‘날욕망’

■ 주간지 전성시대

‘선데이서울’은 지금까지 선정적 대중잡지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 덕에 ‘선데이서울’이 전거가 되기라도 하면 어떤 말씀이든지 단박에 품위가 떨어진다. 주간지 자체가 저급한 잡지로 몰린 데에는 ‘선데이서울’의 공이 크다. 선정, 음란, 외설을 지나 쇼킹과 엽기까지, 대중의 온갖 하위문화적 코드들이 ‘선데이서울’이란 다섯 글자 안에 응축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선데이서울’이 대중잡지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독자의 열망이 이 한 권의 주간지 속에 모두 담겨 있음을 뜻하는 게 아닐까. 한 분야의 대명사가 되었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선데이서울’이 한국 주간지의 시초는 아니지만 한국 주간지를 대표하는 것은 분명하다. 1968년 7월 주간지를 발행하지 않기로 한 협약이 해소되자 각 신문사들은 앞다퉈 주간지를 발행하기 시작한다. ‘주간중앙’을 필두로 ‘선데이서울’ ‘주간경향’ ‘주간여성’ 등이 몇 달 동안 쏟아져 나왔는데, 결과적으로는 ‘선데이서울’이 단연 최고 수준에 올랐다.

대중 주간지는 처음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대중오락 잡지를 표방한 주간지는 곧장 음란, 외설 논란에 시달렸다. 대학생들은 주간지를 불태우면서 불매운동을 펼쳤고, 국가의 검열제도는 실질적으로 위협을 가했다.
1969년 월간지 ‘아리랑’과 ‘인기’가 검찰에 기소되는 상황에서 주간지의 선정성은 1970년대 내내 검열의 최대치를 시험해왔다. 그러나 곡절 속에서도 주간지는 1970년대 대중의 정서를 대변하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로 이 시기를 가로질렀다. 여기에는 도시와 농촌의 근로청년뿐만 아니라 대학생도 포함됐다. 그야말로 1970년대는 주간지의 전성시대였다.

잡지란 읽을거리가 가득 쌓여 있는 텍스트의 보고다. 잡지는 신문에 비해 양과 깊이에서 훨씬 요긴한 읽을거리를 품고 있다. 월간지나 계간지의 수준 높은 정보는 지식인의 요구에 부응한 결과다. 1960년대 말 이후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이 한국의 비평계의 새 흐름을 주도했다. 1980년대 무크지가 시대의 억압을 견딘 것도 마찬가지다. 잡지는 글을 싣는 매체이면서 담론이 모여드는 사상의 저수지 역할을 한다.

그런데 1970년대에 태동한 주간지는 어떠했을까. ‘선데이서울’을 위시한 대중주간지는 고담준론은커녕 한번 읽고 버려도 무방한 기사, 사상의 아카이브가 될 수 없는 통속적 글로만 채워져 있다. 그래서 주간지에는 대중의 다양한 욕망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대중은 주간지가 그려내는 값싼 판타지를 소비하며 일상속에서 허름한 정체성을 확인하고 동질감에 안도한다. 주간지는 ‘선데이’의 가벼운 유흥 이상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것이 대중문화에서는 핵심적인 사건이 된다. 주간지보다 대중의 정체성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매체가 있을까. 이미 화보가 다 뜯겨나간 ‘선데이서울’을 사료로서 넘겨보는 이유는 그 속에서 1970년대를 살아온 대중의 정체와 욕망을 짚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대중적 욕망과 성

경제 성장 이 가시화되자 바야흐로 한국에도 대중사회가 도래했음을 곳곳에서 선포한다. 그런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대중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대중인가. ‘선데이서울’을 통해 본 1970년대 대중의 한 국면은 성(sex)이다. 전후에서 1960년대까지를 아울렀던 ‘명랑’ 이데올로기는 ‘성’이라는 자극적 대상에 의해 소멸된다.

‘3S정책’은 5공화국의 전유물 같지만, 실은 1970년대 ‘선데이서울’에서도 충실히 활용됐다. 스포츠, 영화 그리고 성을 빼놓고는 잡지를 말하기 어렵다. 화보 여배우의 도발적인 육체는 검열관과 대중 모두를 시험에 빠지게 했다. 배우 탤런트 , 가수 , 그리고 스포츠스타의 자잘한 동정이 과장된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연예계 이면에 대한 집요한 관심은 지금의 수준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이들의 이야기는 간통과 불륜의 드라마로 이어지면서 정점에 달한다. 간통 재판 기사는 당대 최고의 특종으로 몇 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파헤쳐진다. 화보에서 여성의 육체를 대할 때와 같이 연예기사는 안 봐도 뻔하다는 듯한 관음증적인 시선으로 채워져 있다. 이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즉 낮 시간의 주부, 고고클럽을 드나드는 여대생과 여공 그리고 전문직이랄 수 있는 마담, 호스티스에게까지 미친다. 주간지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1970년대 대중의 새로움이란 시대 요구에 맞게 분출되고 소비되는 성에 의해 증명되는 것 같다.

1970년 정부의 윤리위원회는 음란성의 기준을 들고 검열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성적 수치심’과 ‘성적 흥분’이란 말이 여기서 시작되거니와, 그 기준이란 형편없이 자의적이다. 예컨대 미니스커트 단속기준이 “속옷이 비치는 칠칠치 못한 여자” “ 경찰 이 보기 민망스러운 아가씨” 등 판단을 포함하는 상황에서 통제의 합리성을 찾기는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선데이서울’의 화보는 대중의 선택을 이끌었고, 통제 권력은 대중의 선택을 적당한 선에서 존중해 주었다. 이는 주간지의 이중적인 태도가 통제 권력과 적절히 호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데이서울’의 ‘쇼킹화제’ ‘놀랐지 정보’만 보면 한국 사회는 온통 성해방에 도취된 듯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주간지는 건전 코드를 이에 적절히 버무려놓는다. 가정주부와 청춘남녀에게는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타이르고, 호스티스와 마담에게는 건실한 직업의식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 같은 성적 올바름은 ‘선데이서울’이 표방한 선정성과는 모순되지만, 성적 유흥의 허용되는 대가로 지불되는 최소한의 포즈이기도 했다. ‘선데이서울’은 이 아이러니를 ‘딸자랑’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포장했다. 학자에서 사업가, 예술인, 정치인에 이르는 사회 저명인사의 딸을 소개 하는 ‘딸자랑’의 화보가 비키니 화보나 거리의 관음적 ‘도촬’과 나란히 놓인 장면은 퇴폐와 순결이 혼재된 1970년대의 한 풍경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 부에 대한 열망 - 성공 이데올로기

주간지의 또 다른 관심은 말 그대로의 ‘돈’이었다. ‘신동아’ ‘세대’ 등 종합교양 월간지와 달리, 주간지는 어떤 수사적 표현도 배제한 채 돈 버는 일에 집중한다. ‘차관’과 ‘재벌’이 월간지의 경제 문제 키워드였다면, 주간지의 관심은 ‘부자’가 핵심적 주제였다. ‘선데이서울’의 초창기에 연재된 ‘예비재벌’은 대중의 열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재벌이 경제문제로 부각될 때 평범한 대중은 재벌의 비리나 국가 경제를 걱정하는 대신, 어떻게 우리도 그들처럼 부자가 될 수 있는지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진다. ‘예비재벌’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재벌처럼 돈을 번 사람들이다. 중소규모 상공인과 자영업자가 다수였지만 공무원이나 교직원, 종교인, 나아가 돈깨나 만진다는 마담들도 예비재벌의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 이들은 하나같이 ‘맨주먹’으로 떨쳐 일어나 남이 부러워할 부를 축적한 입지전적 인물들이다. 몇 년이 지난 후 이들 중에서 준재벌의 수준에까지 오른 이들도 많았으니 이들은 곧 대중의 선망 대상 혹은 역할 모델 이 되었다.

부가 이 시대의 미덕이 되고, 부에 대한 열망이 인정받자, 부를 선취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결과로써 정당화된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돈을 모을 수만 있다면, 그 과정의 작은 비위는 ‘선데이서울’에서만큼은 문제 삼지 않는다. ‘쇼킹화제, 집 사고 차 산 구두닦이 4형제’(1971·1·31)는 가난한 형제의 미담을 전하는데, 기사의 핵심은 그들이 큰돈을 모았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 등장한 땅투기, 고리대금, 식비·하숙비 착취 등은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고 오히려 성공비결로 여겨진다. ‘선데이서울’이 발굴해낸 수많은 성공담들은 1970년대 개발과 성장의 비열한 신화와 너무나 닮아 있다.

최소한의 포즈도 없는 성공 이데올로기의 맨얼굴 앞에서 공식적인 윤리적 규범은 작동하지 않는다. 실상 ‘선데이서울’을 포함한 대중잡지에 등장하는 규범들은 스스로 그 규범을 무화시키는 모순을 노출한다. 예컨대 여성들의 성적 일탈을 질정하는 윤리적 규범이 잡지의 곳곳에 표면화되어 나타나지만, 한두 페이지만 넘기면 곧 여성의 성감대를 가르쳐주며 어떻게 잘 놀고 즐길 것인지를 상세히 알려준다. 가난이라는 좌절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고 한껏 동정하고 위로한 뒤 곧바로 재벌을 향한 부러움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두 모습 모두 대중의 실체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대중의 정서에는 두 가지의 감정이 혼재되어 있다. 모호한 윤리의식에 정체성을 의탁하는 동시에 통속적인 욕망에도 충실한 것이 대중적 욕망의 참모습이다.


■ 권력과 욕망의 사이

 

‘선데이서울’이 보여준 대중의 욕망은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듯이 보이지만, 문제는 거기에도 권력의 억압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문화에 드리운 그림자는 유신체제의 실질적인 힘이다. 1975년을 기점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활력은 한풀 꺾이면서 권력과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대마초 파동같이 직접적인 제재도 있었으며, 긴급조치 같은 초법적 권력에 의해 대중의 의식 자체가 억압당하기도 했다. 이 시기 ‘선데이서울’에도 관변 기사들이 눈에 띈다. 육영수 여사 1주기 특집기사에서 백리 길을 걸어와 매일같이 참배했다는 노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배신자 김형욱’을 비난하는 연예계 인사의 공개 발언이 소개되기도 한다. 1980년에 이르기까지 이 어색함은 가시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선데이서울’은 제 역할을 잃어갔지만, 1970년대 대중성의 기원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통제와 억압에 현실적으로 대응해 간 대중의 날욕망은 지금껏 이어져 온 것이 아닌가. 그래서 ‘선데이서울’의 선정성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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