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라는 용어는 탄생한 1956년으로부터 어느덧 70년, 사람으로 치면 이제 고희(古稀)를 맞이했다. 기술사에서 70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인간의 삶으로 본다면 예로부터 드물고 귀한 나이였다.
사실 인간은 AI라는 이름이 붙기 훨씬 전부터 생물학적 두뇌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기계에 대한 상상을 해왔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8세기경에 구전으로 전해졌던 그리스 신화에 등장했고, 기원전 3세기에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명령받았을 때 자기 일을 잘 처리하는” 상상 속의 도구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상력이 풍부했던 헬레니즘 시대가 끝나고, 기독교 사상이 유럽 사회의 중심이 되면서 그런 상상력은 금기시되었다. 흔히 ’과학의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 시대에는 자연현상이나 기술적 현상도 신의 의지로 설명되던 시대였다. 그랬기에, 사람이 만든 사람같이 생각하는 사물의 존재는 이단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르네상스를 거치고, 계몽주의 시대를 접어들면서 다시 "기계로 생명을 모방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이 던져지기 시작했다. 보캉송의 변을 보는 오리 오토마타나 켐펠렌의 체스 두는 인형 메카니컬 터크(Mechanical Turk)는 기계가 생명을 완전히 흉내 낼 수 있다면, 생명의 본질은 무엇이냐는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이런 질문들은 지금도 우리가 AI를 볼 때 던지는 질문과 닮았다.
현대적 범용 컴퓨터의 구조를 100년 이상 앞서 설계한 찰스 배비지가 당시의 이런 시대 분위기와 발명품들에 영감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고 해도, 배비지의 연구 과정을 살펴보면 현대의 컴퓨터와 AI 역사에서 데자뷔를 보는 듯한 몇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천공카드 시스템의 적용이나, 단일 목적 연산 장치로 시작해 범용 연산 장치로 발전해 간 과정, 복잡한 연산 문제를 수많은 연산으로 쪼개어 단순 작업자가 처리하도록 한 것은 초기 현대 컴퓨터 개발 과정이나 최근 GPU의 활용 방법과도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배비지의 기계에 매료된 러브레이스 백작 부인은 그에게 도움을 주고자 ‘주석’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작성했다. 여기서 그녀는 재프로그래밍을 통한 다양한 연산이 가능한 범용 컴퓨팅 기계의 개념을 정리했다. 또, 프로그램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며, 훗날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라고 추앙받게 되었다. 더 나아가 컴퓨터 AI로 음악을 만드는 미래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은 AI를 위한 하드웨어의 토대가 되는 컴퓨터의 개발과 AI의 첫걸음이 되는 사이버네틱스의 등장을 견인했다. 이와 더불어 앨런 튜링의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논문과 클로드 섀넌의 미로 길을 찾는 목각 쥐는 강화 학습과 탐색에 관한 기초를 제시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 마침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탄생했다.
유아기의 AI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는 시기였다. “기계가 언어를 사용하고, 추상화와 개념을 형성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기계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 찬 시기였다. 당시 연구자들도 "20년 안에 기계가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할 것"이라며 아이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기대를 쏟아냈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AI 연구계는 내적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일라이자는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큰 인기를 거뒀고, 번역 시스템은 큰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곧 한계에 부딪혔고 선구자였던 와이젠바움과 바힐렐은 오히려 AI 연구를 비판하며 변절자 취급을 받았다.
특히 기호주의 AI와 연결 주의 AI 학파의 심각한 충돌은 AI 연구계 전체에 타격을 주었고, 첫번째 AI의 겨울을 끌어당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AI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과 실제 성과의 간극은 커졌으며, 조합 폭발 문제와 현실적 한계로 AI 연구계는 10여년간 혹독한 시련기를 보내야 했다.
20대 중반 청년기의 AI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처음으로 직장을 얻었고, 제2의 황금기를 맞았다. 전문가 시스템은 AI가 산업적으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는 신호를 주었고, 많은 기업이 AI에 관심을 두고, 직접 투자에 뛰어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조심스럽게 발전해 온 신경망도 다층 신경망을 포함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 나갔다. 그렇게 얀 르쿤의 손 글씨 인식기가 개발되고, 내브랩은 느리기는 했지만 신경망을 활용한 자율주행차를 시연하기도 했다. 또 IBM의 딥 블루가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꺾으며 청년 AI의 패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10년도 지나지 않아 AI는 명예퇴직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 시스템은 상식의 정보나 상식적인 추론 능력이 부족해 실제 문제 해결에 명확한 한계를 보였다. 다층 신경망 역시 학습의 한계를 보여주는 현상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프레임문제나 심볼 그라운딩 같은 고전적인 기호주의 AI의 근본적인 한계도 드러났다. 결국 AI에 대한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었고, 제2차 AI의 겨울이라고 하는 또 다른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과장된 낙관론과 두차례에 걸친 침체기에 따른 실망감으로, AI 자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 사회적인 분위기였던 시기에 AI는 새로운 기술을 준비했다. 그것은 통계학적 기반의 머신러닝으로, 40대의 중년이 된 AI는 데이터 중심의 접근 방식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또 다른 부흥기를 맞이했다. 그것은 특히 인터넷의 확산과 컴퓨터 성능의 발전으로 가능했다.
특히 차근차근 힘을 키워온 AI는 40대 중반이 되면서 폭발적인 데이터와 GPU라는 강력한 근육을 얻었다. 또한 그간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 통찰력을 얻은 AI는 50세가 되면서 딥러닝이라는 숙련된 기술을 얻으며 사회적 지위를 공고히 해 나갔다. 그렇게 50대의 AI는 이미지넷의 혁명과 알파고의 등장을 통해 인간의 직관 영역까지 넘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제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60대 초반의 AI는 트랜스포머라는 또 다른 능력을 키웠는데, 60대 중후반이 되면서 생성형 대화 챗봇인 챗GPT를 공개하며 전례 없는 파급력을 보여주었다. 생성 AI를 통해 세상의 이미지와 인간의 언어를 완벽히 마스터하며 70세를 맞이하는 AI는, 화면 속 존재를 넘어 이제 그 지능을 현실 세계의 몸에 이식하는 피지컬 AI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기원전 시기부터 꿈꿨던 고대의 상상이 70년의 기술 역사를 거쳐 마침내 실체적인 몸을 얻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70세가 삶을 관조하고 후대에 지혜를 나누는 나이라면, AI에게 70세는 지능의 보편화와 현실 세계로의 투사로 나아가는 시점이 되었다. 그래서 지난 70년이 "기계에 어떻게 지능을 넣을 것인가"를 고민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그 지능이 현실의 물리적 공간에서 어떻게 인간과 조화롭게 공존할 것인가를 증명하는 성숙의 시간이 될 것이다.

사실 최근의 AI 발전은 하루하루의 변화가 과거 수년간의 변화에 필적할 만큼, 정신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수십년 전의 AI가 어떤 변화를 겪어 왔는지 알아본다는 것이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또 과거의 AI 관련 이벤트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미 많이 바뀌기도 했을 듯하다. 만약 그래서 필자의 글 내용이 독자들의 혼란을 초래한 부분이 있다면, 미리 양해를 구한다.
방대한 AI의 역사를 정리하며 미처 다루지 못한 연구자들과 모델들에 대한 아쉬움은 앞으로의 공부를 위한 동력으로 남겨둔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그런 내용들을 AI 타임스를 통해 소개해 나갔으면 하는 필자 개인적인 바람도 있다.
알파고의 충격이 휩쓸고 지나간 이듬해 창간돼 10년여간 인공지능을 전문으로 다루는 매체를 설립하고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전 세계의 AI 소식을 알려준 AI타임스 임직원들의 노력에, AI의 전성시대인 오늘날을 맞아 큰 박수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역시 AI타임즈를 통해 정보를 얻고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다.
1년여 전, 90회를 목표로 시작된 AI의 발전 역사 연재는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며 지난 100회의 피지컬 AI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의도된 바는 아니었지만, AI가 고희를 맞이하게 되는 올해, AI 발전사 연재를 마무리하게 된 것도 의미 있는 일인 듯하다. 또 두차례의 혹독한 시기를 거친 AI가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이한 이 시기에, AI의 역사를 정리하고, 독자들에게 소개하게 된 것도 필자에게는 영광스럽고 뜻깊은 기회였다.
미천한 경험으로 작성된 글을 게재할 기회를 준 AI타임스에 감사드린다. 무엇보다도 읽기 쉽지 않았던 공돌이의 부족한 글에 관심을 두신 독자들에게 큰 감사를 보낸다. 이제 AI는 고희의 지혜를 안고 우리 곁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 새로운 동행의 시대를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