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1.04.30
수정일
2011.04.30
작성자
김혜준
조회수
874

(고혜림 해설) 장기왕

《장기왕》(장시궈) 작품해설
            

고  혜  림  \"고혜림\"

            

\"《장기왕》(장시궈)\"《장기왕》 장시궈[張系國] 지음, 고혜림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02.07.    ≪장기왕≫은 ‘20세기 중국 소설 100선’에서 79번째로 선정된 작품이다. 장시궈의 소설은 한마디로 ‘과학이 인문학을 만나 날개를 단’ 격이다. 이 소설에서, 12∼13세가량 되어 보이는 왜소한 몸집에 독특한 두상을 가진 소년은 ‘오목 신동’으로 불리며 <신동세계> 프로그램에 출연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우연히 이 소년이 가진 미래를 꿰뚫어 보는 능력에 대해 알게 된 청링 형제들과 그 주변 인물들이 소년에 대해 가지게 되는 각기 다른 욕망들이 다양한 형태로 작용하며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이들의 상충되는 욕망으로 소설이 어떠한 결말을 맺게 되는지는 끝까지 청링과 함께 호흡하며 작품을 읽어 가면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장기왕≫은 오목에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로, 1970년대 당시 막 경제성장기로 접어들던 타이완을 배경으로 해서 가상현실과 실존현실에 대한 아이디어 및 당시 타이완을 살아가는 지식인들의 상상력을 비롯해 인간의 다양한 삶의 욕망들을 치밀한 구조로 담아내고 있다. 장시궈는 자신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만족스러운 것으로 이 작품을 꼽을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이 작품은 스토리성이 강하고 인물들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명쾌한 서술과 속도감 있는 전개로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되는 소설 기교 측면에서나,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서스펜스라는 측면에서나 모두 성공적이어서 작품을 다 읽기 전까지는 도무지 손을 놓기 어려울 정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소설의 화자는 작가 자신과 청링의 사이를 오가며 작품을 끌어가고 있다. 소설은 ‘신동’의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이지만, 그것과 동시에 전개되는 청링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주관적 감상이나 의견, 딩위메이와의 관계, 신동에 대한 고민 등은 주로 청링의 입을 빌려서 말하고 있다. 스토리는 단일한 구조가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주로 청링의 삶을 따라가며 복잡다단한 인생의 한 조각을 그대로 옮겨 내는 데 치중하고 있다. 이야기 중심에 신동이 있지만 신동의 심리상태와 감정에 대해서는 우리는 관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오목을 잘 둔다고 방송 출연이 결정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유명한 장기왕인 류 교수를 만나서 시범 경기를 하게 되었을 때에도,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 능력을 이용해서 이익을 챙기려고 할 때에도 신동은 그저 알 듯 모를 듯한 묘한 표정으로 미소만 지을 뿐이다. 다른 인물들 간에는 대화가 많음에도 작품에서 신동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청링의 시각에서 신동을 관찰하고 청링과 공감하며 상황의 변화를 주로 살피게 된다.   한창 경제성장 중이던 타이베이를 살아가는 청링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놀라운 능력을 가진 신동의 출현은 그 능력의 상업화로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정작 신동은 돈을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두려워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마음껏 오목을 둘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하는 순진한 아이다. 신동은 마지막까지 그 순수함을 유지하며 자신을 이용하려 했던 사람들에 대한 미움도 원망도 없이, 그 나이답지 않게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모습을 보여 준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청링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는 역할을 한다. 청링은 미술학도로서 화가가 되고 싶어 했지만 그가 가진 재능과 주변 환경은 예술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신동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문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인생의 태도를 열어 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신동의 등장은 고요하던 청링의 주변에 파동을 일으켰다. 신동은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청링의 동생의 말과 같이 ‘다중우주론’을 통한 설명도 가능할 것이고 그저 단순히 예지력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신동이 가진 능력은 예지력만이 아닌 듯하다. 아이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주변을 바꾸는 능력을 가졌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낭중지추와 같다. 자신은 고요하고 조용하게 지내고자 하더라도 주변에서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게 마련이다. 하지만 신동을 이용하려던 사람들은 오히려 신동에 의해 영향을 받고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 보게 된다. 신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도 조금씩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다. 세상의 미래라든지 인류의 미래에 대한 거시적인 질문에도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는 과정에서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아서 능력을 잃게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 작품은 ≪중국시보(中國時報)≫에 1978년에 연재되었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30년이 지나도록 장시궈의 작품 중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 왔다. 저자도 애정을 가지고 가장 많이 손을 본 작품으로, 발표된 후에도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계속해서 장르를 바꾸어 연출되었다고 한다.(張系國, ≪棋王≫, 臺北: 洪範出版社, 2009의 신판 후기 pp.215∼216 참고) 소설 발표 후 30년이 지난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을 만큼 호기심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녹아 있다. 특히 인물들의 성격 창조와 미묘한 심리 상태, 서로 간의 관계와 갈등 및 그 해소 과정 등이 흥미롭게 진행된다.   장시궈는 인문학도가 아닌 과학도로서 꾸준히 소설을 창작했다. ≪장기왕≫에서는 과학과 인문학의 조화로운 만남을 통해 창조된 SF소설의 묘미와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우선, 타이베이가 가지는 특징들을 잘 담아내어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익숙한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출퇴근 시간의 복잡한 타이베이 시내의 모습, 언제나 변함없는 우리 골목의 이웃 사람들, 성장 지향의 도시 속을 살아가는 지식인의 삶, 일을 하지만 그것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도 투영시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장시궈는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시켜 준다. 시간 여행과 더불어다른 차원의 우주에 대한 이야기들은 SF소설의 거장들이 빠지지 않고 다루어 왔던 소재들이다. 기호와 기대치가 한층 높아진 독자들의 구미를 사로잡을 만한 효과적인 소재들을 채택해 내용을 구성했다. 마지막으로 읽기 편한 쉬운 문체와 언어의 사용 및 빈번한 대화체 서술을 통해 가독성을 높이고 있다. 긴박한 데드라인을 맞추면서, 점차 늘어 가는 독자들의 반응도 고려하는 연재소설은 중국 고대문학의 장회소설이 현대화한 형식의 하나다. 전문적인 독자가 아니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체여야 하며 대화가 많아야 한다. 너무 많은 인물이 등장할 수 없고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만 등장해야 한다. 이러한 몇 가지 측면과 더불어 다중우주론에 대한 물리학도로서의 통찰과 이를 작가적 필치로 풀어내는 그의 서술 방식은 독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장기왕≫은 장시궈를 ‘타이완의 SF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하게 만들어 준 작품이다. 순수문학의 장르에 과학적 상상력을 가미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순수문학에서 창조 가능한 세계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광중(余光中)은 신판 작품 서문에서 장시궈를 “지적이며 희망을 담고 있는 작품을 쓰고, 웨일스, 헉슬리, 오웰, 스노 같은 작가들의 선구자적 정신과 지적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작가”(張系國, ≪棋王≫, 臺北: 洪範出版社, 2009의 신판 서문 p.2 참고)라고 평했다.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출판되는 ≪장기왕≫은 타이완 훙판출판사의 2009년 신판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의 초판 역시 타이완 훙판출판사에서 1978년에 출판되었으며, 이후 1983년 광시런민출판사(廣西人民出版社)를 통해 중국 대륙에도 소개되었다. 1981년 프린스턴대학출판사의 ≪Chess King≫으로 미국에 소개되었고, 1986년에는 아시아팩출판사(Asiapac Books Ltd.)를 통해 싱가포르에도 번역 소개되었다.   신문에 연재되었던 관계로 작품에는 1부터 16까지−편의상 ‘장’으로 이름 붙이자면−장별로 번호가 붙어 있다. 이 작품은 손에 쥐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가도록 만드는 흡인력이 있다. 때문에 소설의 흐름이나 지은이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어느 장 하나 놓치기 아까운 스토리를 담고 있다. 그리하여 기획으로 번역되는 이번 작품은 당초에는 발췌 번역을 목표로 했으나 진행과정에서 완역이 결정되어 완전한 모습으로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작품은 스토리성이 짙은 작품이어서 가능한 한 원저자의 스토리에 누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한국 독자들의 정서에 어울리도록 번역하려고 노력했다.   소설 속의 ‘다중우주론’은 장시궈 본인의 물리학에 대한 학문적 바탕이 전제되었기에 가능했으며 그러한 아이디어를 담은 영화와 소설들은 최근 들어 각광 받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한국어로 만날 수 있게 되어 다소 늦은 감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지만지의 고전 번역 기획과 인연이 닿아서 이처럼 한국의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을 참으로 다행으로 여긴다.   이 책은 출판을 위해 애쓴 정경아 편집장, 그리고 이선일 편집자를 비롯한 지만지 여러분들의 노고로 무사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김혜준 선생님과 현대중국문화연구실의 여러 선생님들과 동료들, 그리고 책이 나오기까지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은 가족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고혜림, 〈해설〉, 장시궈[張系國] 지음, 고혜림 옮김, 《장기왕》,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02.07), pp.7-13.

필자의 전재 허락에 감사드립니다.

첨부파일
첨부파일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