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3.11.30
수정일
2023.11.30
작성자
유인권
조회수
145

부산일보 '유인권의 핵인싸' 2023년 11월29일자 "미래를 만드는 힘"

[유인권의 핵인싸] 미래를 만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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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과학은 이성적 사고방식의 기반
효율성 추구하는 기술과는 달라
꾸준한 투자로 기반 공고히 해야



미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다.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해진 것이 없으며, 그래서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다.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지는 오롯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하고, 어떤 미래를 꿈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 각자의 꿈이 있고, 그 미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지금 나의 할 일을 찾아낸다.

감히 단언컨대, 이러한 상상과 생각을 구체화해 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그런데 현재 의대에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는 것을 이러한 꿈의 발로라고 이해해야 할까. 이 사회에 참으로 다양한 성정과 꿈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이렇게 단 하나의 전공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생을 건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학교수로 일한다는 것은 나에겐 참으로 행운 같은 일이다. 그 무엇보다도 미래를 꿈꾸는 젊은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마음이 설렐 정도로 정말 가슴 벅찬 일이다. 그래서 수업시간에는 물론 늘 학생들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묻는다. 상담시간에 찾아온 학생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세 시간 동안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런 질문을 무척 생소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아니, 교수로서 이런 질문을 안 하면 도대체 어떤 질문을 해왔던 것일까. 괜히 미안한 마음에서, 완곡하게 왜 대학이란 곳에 오고자 했으며, 왜 하필 이 전공을 택했는지를 묻는다. 안타깝게도 많은 학생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고 있으며,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또 대부분의 경우 그런 꿈을 꾸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고 있다. 도대체 우리 젊은이들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우리 사회가 크게 잃어버리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흔히 과학이라 하면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만을 머릿속에 떠올릴지 모르지만, 과학은 이성적·논리적 사고에 근거한 학문 방법을 뜻한다. 비과학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 간단할지도 모르겠다. 비과학은 미신이나 종교처럼 이성 저편의 직관적인 비논리적인 사고방식을 말한다.

즉, 과학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학, 사회과학을 모두 포괄한다. 우리의 이성적 사고방식의 기반이다. 과학과 구별되는 것으로 또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에는 공학과 예술 분야가 있다. 보통 과학을 바탕으로 그 위에 꽃피는 것이 기술과 문화다. 그래서 서양의 고등교육에서 대학(University)과 별도의 학제를 만들어 공과대학과 예술학교를 따로 두고 있다. 지향점과 교육방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은 돈을 투자하여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일이고, 기술은 새로운 지식을 활용하여 실생활을 유익하게 하여 돈을 벌어들이는 일이다. 과학은 연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기술은 개발을 통해 이루어진다. 과학은 지난한 세월을 거쳐 중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 반면, 기술은 빠르게 따라잡고 습득하고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과학은 생각이 풍부해지는 문화를 만들고, 기술은 돈이 풍요해지는 경제를 만든다. 과학은 공적인 투자와 대중의 공유를 토대로 하는데 반해, 기술은 사적인 투자와 특허 등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무척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 과학과 기술은 헌법 제127조 제1항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데 근거하여, 전혀 구별이 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국민경제에 기여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뒤집어 얘기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못 버는 과학은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에 의해 새로운 생각과 지식이 인류문명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과학에 수반되는 기술 개발은 저절로 최첨단이 된다. 누가 의도하지 않아도 자생적인 개발 단계를 거쳐 실생활에 응용되고 새로운 산업의 영역으로 확대된다. 엑스포는 대체로 각국이 저마다 ‘최첨단의 기술’(State of the art)을 자랑하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가 되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아무런 사심 없이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하여 오랜 세월 축적된, 과학에 의한 새로운 지식과 생각이 있는 것이다.


씨앗부터 묘목을 키워내고, 과수원에 나무를 심고 줄기와 잎을 만들어 꽃을 피우고, 마침내 그 꽃이 영글어 열매를 맺기까지 과수원에는 얼마나 많은 물이 뿌려졌을까. 우리는 나무도 안 심고 물도 주지 않은 채, 어느 나무가 열매를 더 잘 맺을지 서로 경쟁시키면서, 열매만 바라고 있다는 생각은 나만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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