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4.07.08
수정일
2024.07.08
작성자
유인권
조회수
6

부산일보 '유인권의 핵인싸' 2024년 1월 10일자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의 존엄함"

[유인권의 핵인싸]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의 존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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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원리의 핵심은 보편성
일방적 상식은 존재하지 않아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르는 법



코스모스(Cosmos)로 통칭되는 우주는 질서를 의미한다. 삼라만상의 운동과 변화를 지배하는 거대한 원리가 있다는 상상에서 비롯된 것인데, 무엇도 피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이 거대한 원리를 밝혀내는 ‘과학적 법칙’은 과연 전능한 것일까.

아주 놀랍게도, 21세기의 4분의 1을 내다보고 있는 지금까지도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지구는 편평한 원반인데, 이러한 사실을 미우주항공국(NASA)은 다 알면서도 숨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극도의 혼란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지구가 편평한 200가지 증거를 나열한 2시간짜리 동영상도 있다. 성경 어디에도 지구가 둥글다는 말이 없으며, 특히 세상 종말에 구세주가 세계 만민들에게 ‘동시’에 나타날 성경의 예언을 성취시키려면 지구가 편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지구편평론자들의 모임에 직접 찾아간 한 외국 방송사가 가로로 줄무늬가 그려진 커다란 깃발을 펼친 채 수평선까지 멀리 보내면서 이를 관찰한 영상이 있다. 깃발이 아래부터 없어지는지, 아니면 소실점이 될 때까지 다 같이 작아지면서 사라지는지를 망원경으로 관찰했다. 편평론자들은 깃발의 아래 줄무늬부터 없어지는 것을 같이 확인하면서도, 이내 지구 대기의 산란과 착시현상을 이유로 들며 지구가 편평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처럼 사람은 논리로 설득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지구가 둥글 수밖에 없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식’이다.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구가 아주 빠르게 돌고 있다면, 지구가 더 납작해질 수는 있어도 편평해져서 반대쪽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2차원의 상태는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어디가 반대쪽인지, 어느 한쪽만 선택적으로 특별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모서리나 가장자리가 존재할 만한 특별한 이유는 있을 수가 없기에, 지구는 둥글 수밖에 없다.



‘과학적 법칙’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상식에 가깝다. 그래서 종종 이런 상식이 깨질 때 우리는 충격에 빠지곤 한다. 반응 전후에 질량이나 전하량이 난데없이 사라질 타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 ‘보존법칙’의 요지다. 그런데 어떤 결합에서 질량이 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결국, 사라진 질량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에너지 형태로 바뀌어 물질을 결합시키고 있다는 해석에 이르렀고, 이것은 그 유명한 ‘질량-에너지의 등가원리’의 초석이 됐다. 덕분에 ‘질량보존의 법칙’은 ‘질량-에너지 보존법칙’으로 진화했고, 우리의 상식은 확장됐다. 심지어 소립자의 경우 생성 환경에 따라 질량이 변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단 3개의 가벼운 쿼크로 구성됐다고 여겨지는 양성자가 무려 100배나 더 무겁다는 것은 질량 자체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불러왔다.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공중 격투장면은 물리학자들에게 견디기 힘든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할 때가 많다. 아무 지지대도 없는 허공에서 가격하는데, 상대방만 멀리 나가떨어지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누가 때리고 맞든지에 상관없이, 두 상대는 같은 상황이 아닐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이 나가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반대 방향으로 나가떨어져야만 한다. 일방적인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총알이 발사되면 반드시 반대 방향으로의 반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또,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중성자가 양성자와 전자로 분열하는데, 그 분열 각도가 180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머지 방향으로 무엇인가가 방출되지 않고서야 도저히 운동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덕분에 잘 보이지 않아서 모르고 있던 무엇인가를 찾아낸 것이 바로 중성미자다. 이처럼 과학법칙은 경험과 더불어 스스로 진화하는데, 현상을 보다 알기 쉽게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큰 상식이다. 단지 한 쪽의 입장에서만 보면, 자기가 뒤로 날아가는 것은 모르는 채 상대방만 나가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자기 중심의 해석도 가능하다. 결국 자기가 뒤로 날아가 다른 무엇인가에 크게 부딪히게 될 때에야 비로소 자기도 뒤로 나가떨어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상식과 법칙의 존엄함은 ‘그렇지 않을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보편성에 있다. 결코 차별적일 수도, 일방적일 수도 없다. 표창장 하나로 집안 전체가 쑥밭이 된 기억이 생생한데, 휴대전화 잠금 해제를 거부해서 면죄가 되고, 국회가 요청한 진상규명을 거부하면서도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을 운운한다. 굳이 보존법칙을 들먹이지 않아도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게 마련인데, 이 뒷감당을 어찌하려나 모르겠다. 단지 둘로 갈라진 국민들과 자기들만의 ‘일방적 상식’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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