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1.05.12
수정일
2021.05.12
작성자
유인권
조회수
412

부산일보 '유인권의 핵인싸' 2021년 05월 12일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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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권의 핵인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원자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미세먼지처럼 전자가 뿌옇게 가득 찬, 텅 빈 월드컵경기장 같다. 사실 떠돌아다니는 전자들이 많지도 않은데, 짙고 옅은 무늬만 보일 뿐 어디에서도 분명한 전자의 위치를 알아볼 수는 없다. 분명히 무엇인가 있는 게 분명한데, 잘 보이진 않는다. 아주 자세히 보면, 그 큰 월드컵경기장의 한가운데에 작은 알갱이가 있다. 심지어 이 알갱이는 원자 전체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양전하를 띤 이 무거운 알갱이 주위에 보이지도 않는 음전하의 전자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다. 양전하를 띤 무거운 알갱이가 ‘(원자)핵’이다. 핵은 양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로 구성돼 있다. 양성자 1개 주위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1개의 전자가 월드컵경기장처럼 거대한 공간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원자번호 1번 수소 원자다.

많은 소립자들은 결국 쿼크들의 조합
쿼크는 혼자서는 존재 불가능한 존재
사람 간에도 그런 숙명 돌아보게 돼

일반적으로 전기적으로 중성인 모든 원자들은 각각 내부에 같은 수의 양성자와 전자들을 갖는다. 여러 개의 전자가 거대한 공간을 흩어져서 돌아다니는 데 비해, 같은 수의 양성자들은 비슷한 수의 중성자들과 다닥다닥 엉겨 붙어 있다.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들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같은 양전하를 띤 양성자들이 그렇게 가까이에서 서로 밀치지도 않고 빽빽이 붙어 있을 수 있다니!
바로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하나의 핵으로 결합시키는 힘이 강력(강한 상호작용)이다. 심지어 양성자와 중성자들은 따로 떨어져 있을 때보다 같이 합쳐져 있을 때 전체 질량이 약간 줄어드는데,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에 의해, 이 약간의 질량 차이는 엄청난 양의 핵결합 에너지가 된다.
사실 원자폭탄은 핵력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는 상관없이, 결합 에너지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인공 핵분열을 이용한 것이다. 본질적인 강한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는, 1930년대 일본의 물리학자 유가와 히데키가 최초로 제안한 이래, 1950년대 이후 입자가속기를 이용한 충돌 실험에서 새로운 입자들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본격화됐다. 이토록 많은 입자들이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세상은 궁극적으로 무엇으로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설명하는 ‘표준모형’이라는 이론이 있다. 노벨 물리학상의 대부분이 이 모형의 완성에 크게 기여했으며, 2013년 힉스 입자의 발견은 표준모형의 화룡점정이었다. 이 표준모형에 의하면, 양성자도 중성자도 모두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쿼크라는 점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동안 발견된 그토록 많은 소립자들은 결국 최종적으로 제안된 6개 쿼크의 서로 다른 조합이며, 이 모형에서 예측된 새로운 조합의 입자들도 놀라운 정확도로 모두 발견됐다.
단지 다소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개별 쿼크들은 직접적으로 발견된 적이 없으며, 숙명적으로도 발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쿼크들은 반드시 다른 쿼크들과 결합한 입자(강입자)의 형태로만 관측될 수 있다. 쿼크들 간에 작용하는 강한 상호작용은 일정 영역 내에서는 거리가 커질수록 점점 더 세지기 때문에, 이 쿼크들을 떼어 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투여된 큰 에너지는 새로운 쿼크 쌍을 만들어 내게 되고, 결국 또 새로운 강입자가 구성되면서 분리되는 것이다.
떼어 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숙명적으로 떼어 낼 수 없는 관계, 이것을 ‘쿼크의 구속 문제’라고 한다. 이는 아직도 인류가 풀지 못하고 있는 난제로서, 애초에 쿼크가 어떻게 그런 구속 상태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동반한다.
사람들 사이에도 그런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가 있을까. 부모-자식을 비롯한 혈연관계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일례가 될 것 같다. 어쩌면 쿼크의 세계에서처럼 멀리 떼어 내기 위해서 새로운 짝을 만들어 새로운 가정으로 독립시켜 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최근 보도되는 끔찍한 아동학대와 친족 범죄, 그리고 이미 많이 익숙해진 1인 가구와 혼밥족은, 일찍이 유대감이 상당했던 우리의 전통에 견주어 사실 상당히 이질적이다.
개별적인 인권과 독립성에 대한 존중의식은 분명한 시대적 요청이지만, 한편으로는 모두가 모래 알갱이처럼 개별화되는 것이 코로나 시대를 맞아 너무 당연해져서, 가까운 미래에는 모든 것이 분해돼 버릴 것만 같다. 편의와 실용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는 무언가 보다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가정의 달 5월에 새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생각한다.


[출처: 부산일보]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051118384338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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