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1.08.24
수정일
2021.08.25
작성자
유인권
조회수
475

부산일보 '유인권의 핵인싸' 2021년 8월 25일자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戰車)"

[유인권의 핵인싸]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戰車)

“지구를 식혀 주는 선풍기 같아요. 우리 차도 그러고 있는 거 맞죠?”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등장하는 광고를 무심히 보다가 깜짝 놀랐다. 전기차가 지구를 식혀 주는 청정에너지로 오해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름을 태워서 매연을 뿜어내는 자동차보다야 대기오염은 덜하겠지만, 그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지구는 또 더워질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서 수송 분야가 약 13%, 발전 분야가 39%임을 고려하면 어느 쪽이 덜 해로운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 탄소 배출량 세계 평균 2.6배

환경 파괴는 끝없는 인간의 욕망 탓

지속가능한 미래 설계하고 지향해야

현재 세계적으로 배출되고 있는 온실가스의 양은 약 350억 톤이다. 2018년 기준 중국 112억 톤(32%), 미국 53억 톤(15%), 인도 26억 톤(7%), 러시아 17억 톤(5%), 일본 12억 톤(3%)에 이어 우리나라가 독일, 이란과 비슷한 수준의 세계 6위권으로 7억 톤(2%)을 배출하고 있다. 고작 2%에 불과하다 하겠지만, 1인당 배출량으로 보면 중국 7.0톤, 미국 16.6톤, 우리나라 12.4톤으로 중국이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고 우리가 미국의 75%에 달한다. 세계 평균이 4.8톤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의 2.6배나 이 지구 행성에 더 해로운 존재들인 셈이다. 도대체 무얼 잘못했기에 우리도 모르는 새 해로운 존재가 된 것일까.
일반적으로 온실가스(탄소) 배출량은 다양한 생산활동의 결과로 읽힌다. 지난 150년간 지구의 평균 온도와 탄소 배출량을 비교하면, 놀랍게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2000년간 꾸준히 평형을 유지하던 지구의 평균 온도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인류 생산 활동이 본격화한 1970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70년부터 2020년까지 50년 동안 섭씨 1도 증가했다. 탄소 배출량은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이 본격화한 1870년부터 100년간 매년 1억 톤씩 증가했는데, 1970년 이후 불과 50년 만인 2020년에 350억 톤으로 연간 5억 톤씩, 총 3.5배가 됐다. 이로써 20세기 중반 시작된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는 50년 만에 지구촌 곳곳의 온갖 기상재해로 현실화됐다. 지난 2년간 세계 탄소 배출량은 팬데믹 코로나 덕분에 약 26억 톤(7%)가량 감소했다. 하지만 코로나 대유행과 더불어 급격히 바뀐 생활방식으로 급증한 마스크를 비롯한 일회용, 배달용 포장 용기 등으로 인한 환경 파괴는 또 어쩔 것인가. 지난 2년간 위축됐던 세계 경제가 다시 기지개를 켤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말 그대로 인류의 지나친 활동으로 지구는 과열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탄소 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찾고 있지만, 결국 지구의 온난화와 엄청난 양의 쓰레기, 미세 플라스틱 등으로 파괴되고 있는 이 모든 환경·생태 문제들은 우리가 퍼질러 놓은 수많은 욕망의 결과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그만큼 더 행복해진 걸까.
예전에 비해서 우리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이 편해지고 풍족해졌는데, 경쟁은 더 심해지고, 1인 가구는 늘고 아이들은 줄고 있다. 몸이 편해질수록 비만으로 건강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으며, 쳐다보기도 힘든 천정부지의 집값은 상대적 빈곤감만 키우고 있다. 저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탄소중립 자체를 하나의 산업 이슈로 하는 신재생에너지와 친원전 회귀의 파워 게임은 정치판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욕망을 문제없이 충족시켜 줄 부의 증대에만 혈안이다. 장담하건대 걷잡을 수 없이 광폭하는 인간의 욕망을 채워 줄 무한한 친환경 에너지는 어디에도 없다. 통화량과 경제의 활황은 금리로 조절한다지만, 에너지 소비의 욕망은 도대체 무엇으로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 위기의식을 고취시키고 박애적인 양심에 기댄 탄소중립 캠페인만으로 가능한 일일까.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김구 〈나의 소원〉)
향후 10년은 세계 경제와 기후위기 등 인류 문명의 향배가 결정될 치명적인 시기다. 어김없는 선심성 공약과 넘쳐나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것 말고 과연 우리가 지향할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며 우리의 욕망을 다스릴 지도자는 없을까. 아이들에게 우리는 도대체 어떤 세상을 남겨줄 수 있을까.


[출처: 부산일보] Link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