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1.12.06
수정일
2021.12.06
작성자
유인권
조회수
304

부산일보 '유인권의 핵인싸' 2021년 10월 13일자 "디지털 시대의 자화상 - 메타버스"

[유인권의 핵인싸] 디지털 시대의 자화상-메타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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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무슨 특화된 버스(Bus)인 줄 알았다. ‘Metaverse’라는 철자를 보고서야, 유에스비 (Universal Serial Bus, USB)와는 다른 버스란 걸 알았다. 우주를 일컬어 유니버스(Universe)라 하고 다중우주를 멀티버스(Multiverse)라고 하니, 그걸 뛰어넘는 ‘초월(메타)의 세상(유니버스)’ 쯤으로 이해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돼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바타(Avatar, 신이 인간의 몸을 입은 형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용어, 컴퓨터 사용자 자신을 묘사한 이미지)들이 등장하는 가상 세계란다. 현실 세계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활동을 네트워크상에서 공유한 ‘가상·현실 세계’인데, 최근 코로나 상황에서 급증한 비대면 활동의 결정판인 것 같다. 심지어 최근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정부의 ‘디지털 뉴딜’의 핵심 정책으로 채택되는 등 열풍이 거세다.

실제 감각과는 괴리된 증강현실 세계

마음 한쪽에는 외면하고픈 현실 있어

공허한 기술에만 집착하는 건 아닌지

디지털은 모든 정보의 숫자적 형태다.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자연계의 정보는 거의 예외 없이 아날로그다. 눈에 보이는 모양, 우리가 느끼는 덥고 차가운 정도, 귓가에 들리는 소리, 달콤함과 쓴맛의 미묘한 쾌감,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바람의 냄새, 모두 하나같이 숫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느낌들은 저마다 안에서만 오묘한 조화로 갇혀 있을 뿐, 좀처럼 형언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남에게 전달하기도 어렵다. 이 구체적인 느낌들을 전달하고 공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형식으로 나타내야 하는데, 이 과정을 추상(abstract)이라고 한다. 인간이 발명한 추상의 형식은 몇 가지가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대표적인 것이며, 정의와 개념을 논리적으로 발전시킨 수학, 영감과 느낌을 예술적으로 전달하는 악보와 그림도 있다. 각자에게만 존재하는 구체적인 느낌과 생각이 다양한 형식을 통해 얼마나 풍부하게 소통·공유되는지가 그 사회의 문화와 삶의 깊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깊고 풍부한 만큼 소통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방법, 범위가 지극히 제한적이다.

따라서 이 복잡하고 다양한 정보를 숫자로 나타내는 일은, 세상과 연결된 컴퓨터로 거의 무한한 정보 처리가 가능해진 오늘날 마치 각자에게만 갇혀 있던 무한한 생각들에 날개를 달아 빛의 속도로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 일이다. 실제 정보에 근접하도록 정보량과 처리 속도를 최대한 높이고, 압축 전송하는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은 인공지능과 5G에 이르기까지, 미래의 먹거리를 창출하는 차세대 첨단 기술임에 틀림없다. 거의 무한한 실시간 소통과 공유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과연 이것은 온 세상에 빛이 가득 넘쳐나는 낙원일까, 아니면 온 세상을 덮친 불바다나 물난리 같은 재앙일까.

새삼스럽게 차고 넘치는 디지털 정보의 통제와 독점, 위험성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지나치게 디지털이라는 형식에만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1kg은 있지만, 물 1L의 무게감은 없다. 디지털 세계엔 거의 모든 정보가 있지만, 우리의 실제 느낌이 없다. 심지어 메타버스의 증강현실은 실제의 감각을 맘대로 오도한다. 주머니의 돈과 디지털로만 집계되는 경제(심지어 실물 경제와 디지털 경제와의 구별도 분명하지 않다)는 이미 괴리된 지 오래다. 얼굴 표정을 디지털로 바꾸는 첨단 기술에는 열을 올리지만, 실제 우리는 점점 표정이 없어지거나 가식적이 된다. 비싼 성형수술도 필요 없는 메타버스의 세계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엔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있는 것이다.

굳이 메타버스를 들먹이지 않아도 돌아가는 일들이 꼭 메타버스 같다. 실감할 수 없는 액수의 돈이 오가고, 일말의 정의감이나 죄책감과는 아무 상관 없는 형식적인 수사를 하고, 모든 결과는 정파적 음모인 것만 같다. 심지어 누가 대선 후보가 되든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고, 느낄 수 있는 한계를 이미 넘어섰다. 졸지에 원한 적도 없는 오징어 게임에 내몰린 느낌인데 너무 급작스러워 영문도 모르는 상황이다. 평생 구경은커녕 상상조차 못 해 본 금액, 그런 돈을 쌈짓돈처럼 주고받는 풍경들, 별로 웃기지도 않은 별나라 이야기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터진 김밥에서 쏟아져 나오는 밥벌레로 묘사한 시인이 있었는데, 어쩌면 우리는 네모반듯한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돈벌레이면서 메타버스의 아바타로만 살아가고 싶은, 느낌이 없는 공허한 형식과 기술에만 집착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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