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2.07.14
수정일
2022.07.14
작성자
유인권
조회수
295

부산일보 '유인권의 핵인싸' 2022년 7월 13일자 "원전 논란 속 지금도 쌓여 가고 있는 것"

[유인권의 핵인싸] 원전 논란 속 지금도 쌓여 가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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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모든 원자로는 천연우라늄을 사용한다. 흔히 핵 재처리시설이라고도 부르는 우라늄 농축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천연우라늄은 대체로 99.3%의 우라늄-238, 0.6%의 우라늄-235, 0.1%의 기타 우라늄 동위원소로 구성된다. 우라늄(양성자 수 92) 뒤에 붙는 숫자는 중성자 수와 양성자 수를 합친 질량수다. 우라늄-235는 92개의 양성자와 143개의 중성자로 구성된 우라늄의 동위원소다. 천연우라늄이기 때문에, 모두 자연계에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우라늄의 동위원소들이다.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대책 없어

350만 부산시민 위험 안고 살아

무책임한 정부에 대한 불신 고조


천연우라늄 내 함량이 0.6%에 불과한 우라늄-235는 중성자와 만나면 극히 불안해져서 가벼운 두 개의 원자핵으로 쪼개지는데, 이때 2~3개의 중성자가 튀어 나와서 옆에 있는 우라늄-235를 가격하게 되면 연속 핵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엄청난 열이 발생하는 일련의 핵반응이 끝나면, 질량수가 90~100 및 130~140인 두 종류의 새롭게 생성된 핵분열 파편물들과, 천연우라늄의 대부분이었던 우라늄-238이 중성자를 흡수해 변환된 플루토늄-239 등 우라늄보다 더 무거운(초우라늄, TRU) 원자핵들이 남게 된다.

즉, 플루토늄과 같은 막대한 양의 초우라늄 원소들이 들어 있는 ‘사용 후 핵연료’는 방대한 양의 핵분열 파편물이 방사성 핵붕괴를 하고 있는 뜨거운 방사선 덩어리다. 이것을 고준위방사성폐기물(고준위방폐물)이라 한다. 이 고준위방폐물의 방사능이 사라져 일상적인 자연물이 되기까지는 짧게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수십만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핵 재처리시설이 없는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이 고준위방폐물은 최종 처분 전까지 상당 기간 동안 완벽하게 격리·차폐하고 냉각시켜야 한다. 현재 이 고준위방폐물인 ‘사용 후 핵연료’는 원전 내의 수조에 담겨 (임시) 보관 중인데, 방사선으로 인해 파란색을 띠고 있다.

연탄을 이용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까만 연탄이 가득 찬 창고를 볼 때의 든든함과 한쪽에 다 타 버린 연탄재가 늘어 갈수록 이것을 내다 버릴 숙제감이 하나씩 쌓여 가는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연탄재는 사실 다 타 버린 재에 가깝기 때문에 그냥 미끄러운 얼음이나 눈이 쌓인 땅에도 뿌리고 흙이랑 섞여 그대로 방치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준위방폐물은 엄청나게 위험한 뜨거운 방사선 덩어리다. 연탄조차도 새 연탄을 들여놓을 때 연탄재 쌓을 요량을 하는데, 원자력발전을 시작할 때부터 예측이 정확하게 가능했을 이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해서 아직도 아무런 국가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은 정부의 분명한 직무유기다.



방사능 관리구역에서 사용된 옷, 장갑, 도구 등 방사선에 오염된 물자들을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이라 한다. 이 중·저준위방폐물의 폐기장이 처음으로 결정된 것이 1978년 고리 1호기가 최초로 상업 운전을 시작한 지 25년이 지난 2003년이다. 결국 준전시 상태를 방불케 하는 부안 사태를 겪고 나서야 전국적인 공모를 통해 2005년에야 경주시가 선정됐다. 중·저준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준위방폐물인 ‘사용 후 핵연료봉’은 원전 내 수조에 차곡차곡 쌓아 둔 채, 정부는 2013년에야 불과 3년 뒤로 다가온 예상 포화시점을 발표한다. 이후 수조 내 핵연료봉의 쌓는 방식만 바꿔 가며 이 예상 포화시점은 고무줄처럼 변한다.

결국 저장고에 대한 논의는 파행을 거듭했고, 영구 처분시설은 여전히 요원한 채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원전 부지 내에 중간저장시설 설치를 허용하는 법이 지난해 9월 제정됐다. 월성 원전의 포화시점을 불과 3개월 앞두고서였다. 결국 포화시점을 넘긴 올해 3월 14일 경주 월성원전 부지 내에 중간저장시설인 ‘월성원전 사용 후 핵연료 조밀건식 저장시설(맥스터)’이 완공됐다. 앞으로 월성 2-4호기에서 발생하는 핵연료가 보관될 예정이다.

현재 추정하고 있는 고리 원전 수조의 예상 포화시기는 앞으로 5년 뒤인 2027년이다. 이때가 되면 고리 원전 부지 내에 새로운 중간저장시설이 설치되고, 또 거기에 ‘사용 후 핵연료봉’이 차곡차곡 쌓이게 될 것이다. 40년이 넘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원전 내 수조에 방치했듯이, 또 40년은 여전히 뜨거운 방사선 덩어리인 핵연료봉은 인구 350만 대도시 부산의 지척에서 쌓여 갈 전망이다.

‘탈핵-친원전’에 대한 끝도 없는 입씨름을 할 때가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가득 찬 원전 내 수조에 고준위방폐물이 대책도 없이 더 빽빽하게 들어서고 있는데, 부산을 책임지고 있는 어느 누구도 아무런 말이 없다. 원전이 유럽의 친환경 발전에 포함됐다는 얘기는 무성한데, 고준위방폐장이 그 중요 전제조건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신과 무책임도 차곡차곡 쌓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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