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2.08.24
수정일
2022.08.24
작성자
유인권
조회수
265

부산일보 '유인권의 핵인싸' 2022년 8월 24일자 "타임머신 프로젝트"

[유인권의 핵인싸] 타임머신 프로젝트

부산일보 링크

타임머신은 있다. 공상과학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본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공간’을 통해 ‘보는’ 모든 대상은 빛이 여행하는 시간만큼의 과거의 것이다. 지구로부터 태양까지의 거리는 약 1.5억km. 그런데 빛은 1초에 30만km만 갈 수 있으므로, 태양으로부터 출발한 빛이 우리 지구에 도달하기까지는 무려 8.3분이나 걸린다. 즉,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태양은 8분 전 ‘과거’의 모습이다. 거리(공간)는 모두 과거(시간)로 환산될 수 있으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시간과 공간은 본질적으로 같으며 ‘시공간’이라 통칭한다.

그래서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는 밤하늘은 그 자체로 시간을 하늘에 펼쳐놓은 타임머신이다. 달은 약 1초, 금성과 화성은 각각 2분과 4분, 태양은 8분, 목성은 35분, 토성은 70분 전의 과거다. 누구나 밤하늘에서 쉽게 찾아보는 북두칠성은 80년부터 130년, 북극성은 430년 전 임진왜란이 발발하던 때 출발한 별빛이다.


1960년대 소련에 뒤진 미국 우주개발

종국엔 인류의 새로운 도약 이끌어 내

‘바꿀 수 있는 미래’를 고민하는 삶 돼야


지구로부터 태양과 반대방향으로 150만km 멀어진 위치에, 인류가 쏘아 올린 망원경이 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 JWST)이다. 1990년대부터 구상됐으나, 초기 예산의 3배를 넘기면서 프로젝트 폐기의 위기와 수십 년의 일정 변경 끝에 작년 크리스마스 때 발사됐다. 달 궤도를 넘어 수백만km를 가로지르는, 무려 6개월이나 되는 오랜 여정 끝에 작동을 시작한 이 우주망원경의 첫 영상들이 마침내 지난 7월 공개됐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웹페이지(https://www.jwst.nasa.gov)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이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흥분으로 차마 잠을 이루지 못했다. 138억 년 우주 역사상, 빅뱅 이후 태어난 거의 최초의 별과 은하를 보고 있는 최초의 인류이기에.

이 우주망원경에 붙여진 ‘제임스 웹’이라는 이름은 과학자의 것이 아니다. 행정관료, 미 항공우주국의 국장(장관급)의 이름이다. 법대 출신으로, 1960년대 초 케네디 대통령 시절 미 항공우주국의 수장으로 발탁돼 사람을 최초로 달에 보낸 아폴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1992년에 고인이 된 그의 이름을 이 역사적인 우주망원경에 붙인 것이다. 덕분에 역사는 물론 전 세계인의 뇌리에 남게 됐다는 것은 인상적인 대목이다.



사실 냉전으로 얼어붙었던 1960년대의 초기 우주개발은 전술적 동기에서 촉발된 측면이 강하다. 소련이 성공시킨,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는 당시의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레이더로 감지가 불가능한 핵폭탄이 대기권을 뚫고 곧바로 미국의 하늘에 나타날 수 있다는 공포였다. 이쯤 되면 제임스 웹을 미국을 소련의 핵 공포로부터 구해 낸 영웅쯤으로 생각하기 십상이겠지만, 실상은 이와 사뭇 다르다. 결과적으로 사람을 달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킴으로써, 미국의 우주개발이 한 수 위라는 것을 보이고, 소련을 제압했다는 면에서 미국의 승리를 견인해 낸 것은 맞지만, 사람을 달에 보내는 것은 핵폭탄에 대한 전술적 방어와는 사실상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달에 보낼 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귀환시키고자 추진된 일련의 프로젝트들에서 인명사고들이 잇따르자, 당시 미국의 여당이던 민주당조차도 아폴로 계획의 취소를 강력히 요구하는 등 엄청난 비판을 무릅써야 했기 때문이다. 즉, 국가주의에 직결된 우주개발의 전술적인 측면을 넘어 인류의 새로운 도약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지켜 낸,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위를 입증한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공교롭게도 우리 누리호의 성공적인 발사가, 북한의 핵무장과 연이은 미사일 도발이라는 전술적 상황과 겹쳐 있고, 이미 2003년부터 세 차례나 성공적으로 발사돼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의 우주망원경들이 상대적으로 덜 조망되고 있는 점에서, 세계 7번째로 스페이스 클럽에 들었다는 자축만 하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다.

미 항공우주국은 1972년에 태양계를 가로질러 무한 우주로 향하는 ‘파이오니어 10호’를 발사한다. 이 우주선에는 단순한 우주탐사를 넘어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외계 생명체를 만날 경우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메시지로서 인간의 모습과 태양계를 그린 금속판이 실려 있다. 바꾸지도 못할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미지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 모든 생명체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바꿀 수 없는’ 미래는 분명하지만, 적어도 어떤 의미로 남겨질 삶을 살 것인가는 오롯이 우리 자신에게 달린 일이다. 과거를 바꿀 수 있는 타임머신은 없지만,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타임머신은 그래서 현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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