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타운 (양쯔 강에서 보낸 2년)

　

피터 헤슬러 지음 | 강수정 옮김 | 눌와

　

　
동아일보 이방인이 본 급변하는 중국의 모습 유윤종 기자 2003.08.09
“장쩌민 주석께서 추천하신 영화 ‘타이타닉’. 저희 상회는 타이타닉의 유일한 광고주입니다.” ‘개혁’ ‘개방’과는 거리가 먼 듯이 보이는 양쯔강 중류의 한가로운 도시 푸링. 그곳에도 자본주의와 할리우드의 물결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미국인 영어 교사가 1996년 이곳에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파견됐다. 이방인으로서 인생 한가운데의 평온한 세월을 기대했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덩샤오핑의 갑작스러운 사망, 홍콩의 중국 반환, 5·4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등 중국 사회 격변을 상징하는 굉음들.
저자는 때로 유머 가득한 말투로, 때로는 신랄하게 ‘중국의 격동’과 모순을 꼬집는다. 몇 년 후면 세계 최대 규모인 싼샤댐의 담수로 송두리째 바뀌어버릴 양쯔강 허리를 찾아 쓴 현장 기록에는 이방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 있다.
조선일보 양쯔강변 보통사람들 이야기 정재연 기자 2003.08.09
1996년 8월 하순, 스물일곱 살 미국 청년이 평화봉사단 일원으로 중국의 작은 도시 푸링에 도착한다. 책은 환영식에 어쩌다 반바지 차림으로 참석,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을 시작으로 저자가 들려주는 ‘양쯔 강에서 보낸 2년의 기록’이다.
푸링 사범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던 저자가 대장정 60주년 기념행사, 덩샤오핑 사망, 산샤댐 건설 등 굵직한 이벤트와 사건을 현지에서 겪으면서 관찰한 보통 중국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중국 학생들의 영어 이름 짓기, 학생들의 영어 작문 내용 등은 우리의 과거를 연상시켜 더욱 재미있다. 곳곳에 나붙은 선전 문구, 코를 풀면 휴지가 시커멓게 변할 정도로 극심한 공해, ‘15분 동안 경적을 무려 566번 누르는’ 택시 운전사들….
또 외국인을 보고 신기해하는 주민들의 아우성 때문에 외출시 이어폰으로 랩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는 저자가 달리기 대회에서 우승, 현지 신문을 장식한 것과, 한국전쟁 등을 놓고 역사관과 세계관이 다른 중국 학생들과 설전을 벌이는 장면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한국일보 안팎에서 살핀 '중국 깊이읽기' 오미환 기자 2003.08.09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변화는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의 과거는 어떤 엔진 혹은 필터로 작용하고 있는지 충분히 살피려면 그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봐야 할 것이다. 중국인 인류학자 황수민(미 아이오와주립대 교수)의 ‘린 마을 이야기’와 베이징에 살고 있는 미국인 작가 피터 헤슬러의 ‘리버 타운’은 안으로부터 바라본 중국 깊이 읽기라는 점에서 눈에 띄는 책이다.
‘린 마을 이야기’는 중국의 한 시골 마을 당 간부의 눈을 통해 중국현대사를 파악하고 있다. 주인공 예윈더는 푸젠성 남부 연안의 농촌인 린 마을의 당 서기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기 6년 전인 1943년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로서는 드물게 고등학교를 나오고, 그 덕에 공산당 간부가 되어 마을 지도자로 살아가는 그의 인생 역정에는 중국 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은이는 1985년과 96년 두 차례 린 마을을 방문해 현지조사를 했다. 그 사이 린 마을은 인구가 늘고 부유해졌지만, 범죄가 늘고 빈부 격차가 커졌다. 동시에 민간신앙 등 전통이 되살아 나는 변화를 겪었다. 예 서기도 변했다. 그는 린 마을에서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과거의 혁명에 대한 향수를 떨치지 못한다. 시내 가라오케에서 흘러간 혁명가요를 부르고, 젊은 여종업원과 술을 마시는 그의 모습에서 지은이는 마르크스주의의 형태를 띤 유토피아적 이상주의가 조용히 냉소주의와 기회주의로 변해버린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모습을 본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중국 현대사를 해석한 ‘린 마을 이야기’와 달리 ‘리버 타운’은 외부에서 들어간 관찰자의 눈으로 중국의 오늘을 말한다. 지은이는 1996년 8월부터 2년간 미국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양쯔 강변 소도시 푸링에 머물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쓰촨성에서도 외진 곳에 속하는 인구 20만의 이 작은 도시의 대학에서 그는 영미문학을 가르쳤는데 그때 만난 학생과 주민들, 주변 지역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사는 중국인의 고민과 기대를 짚어낸다.
그가 푸링에 머문 2년은 대장정 60주년, 덩샤오핑 사망, 홍콩의 중국 반환, 5ㆍ4운동 100주년 등 굵직한 사건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그의 관찰기는 더욱 흥미로워졌다. 그는 자신이 26년을 살아온 서구, 특히 미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정치ㆍ경제ㆍ사회제도와 문화 때문에 그곳 사람들과 충돌을 빚기도 하지만, 중국과 중국인을 편견 없이 바라보려고 애씀으로써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으로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양쯔 강변 풍광과 그곳 사람들의 삶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세밀하게 그려낸 데 있다. 매끄럽고 생기 넘치는 문장도 돋보인다.
국민일보 한 미국인의 눈에 비친 급변하는 중국의 모습 이영미 기자 2003.08.08
한 미국인이 중국 양쯔강과 우장강이 만나는 쓰쵠성 푸링시에서 대학 영어 교사로 지낸 2년의 기록이다. 지금은 베이징에 살며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 기고하고 있는 미국인 피터 헤슬러가 중국에 간 것은 개방의 물결이 거세지기 시작한 지난 1996년. 도착 직후 헤슬러는 반바지 차림으로 대장정 60주년 기념 행사를 구경갔다가 연단에 불려나가 사진을 찍는다. 정치 선동장의 인민복과 반바지만큼이나 어색한, 현대 중국과 미국인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헤슬러의 눈에 인구 20만명의 푸링시는 매연으로 콧속이 까매지고 도심을 질주하는 택시 운전사가 15분 사이에 566번이나 경적을 울려대며 소매치기가 득실대는 소음과 무질서의 도시였다. 구(舊)시가지의 아름다운 목조 건물 대신 파란 유리와 흰 타일의 값싼 빌딩이 점령한 “새롭다고 하기엔 너무 더럽고, 오래됐다고 하기엔 추한” 푸링에서는 거리에 나선 외국인 주위에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헤슬러는 푸링이 49년 해방 이후 처음 맞은 미국인.
이쯤되면 문명 사회의 서구인이 낙후된 중국을 관찰한 기행문쯤으로 단정내리기 쉽지만 ‘리버 타운’은 문화적 충격과 차이를 호들갑떨지 않고 인정한 객관적 시선 덕에 문명 기행의 품격을 획득했다. “나는 (푸링시의)사람들이 땅을 어떻게 변모시켰는지에 주목했지만 중국인들은 땅이 사람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봤다.”
저자는 중국 제자들에게 셰익스피어 소네트의 행을 순서대로 나열해보는 과제를 낸 뒤 감탄한다. “그들은 시의 형식을 이해했다. 그들은 각 행의 강세가 어디에 놓이는지를 알았고 운율의 파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소네트를 들었다. 텔레비전의 보급도, 문화대혁명의 노골적인 파괴도 그것은 어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이방인이었다. 밤11시 정각에 소등하는 기숙사의 일상과 싼샤댐 건설로 마을의 절반이 수몰 위기에 처했는데도 수벽을 쌓아주겠다는 정부의 말에 걱정 한번 하지 않는 태평함, 대학 1학년이 인민해방군 군인으로부터 무릎을 굽히지 않고 행군하는 법을 배운다는 기묘한 사실,“그러나 우리는 구더기가 무섭다고 장을 안 담가서는 안된다”는 교과서 속 문장을 작문 숙제마다 반복해서 베껴내는 학생들의 획일성을 그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부자인 척 사기치지 않고 ‘나’와 다른 타인의 삶을 애정으로 기록한 헤슬러의 글은 “이 책은 중국을 다루고 있지 않다”고 한 서문만큼이나 겸손하고 믿음직스럽다.
문화일보 중국의 본심은 양쯔강 푸링마을에… 오승훈 기자 2003.08.06
“중국의 본심(本心)을 알아야 한다.” 수차례의 중국 출장길에 귀동냥한 말이다. 베이징(北京)에서 상하이(上海)를 지나는 동쪽 해안 중심축이 중국의 정치·경제 중심지이지만 내륙 산시(陝西)성과 쓰촨(四川)성을 가봐야 참모습을 알수 있다는 얘기다. 그네들이 세상의 중심, 중화(中華)의 세계관을 펼쳤던 곳, 그중에서도 양쯔(揚子)강의 중심 줄기인 충칭(重慶)에서 이창(宜昌)에 이르는 양쯔강변이 자주 지목된다.
‘리버타운―양쯔강에서 보낸 2년’(눌와)은 그 강줄기의 중간쯤 되는 포구마을 푸링(部陵)에서 1996부터 2년 동안 활동했던 젊은 미국인 교사 피터 헤슬러의 기록이다. 양쯔강의 누런 흙탕물이 삶을 지탱하는 ‘생수’(生水)로 여기는 사람들, 지금은 인류 최대의 역사(役事)로 불리는 싼샤(三峽)댐 공사로 알려진 곳. 그 어귀에서 미중앙정보국(CIA)의 첩자로 ‘오해’를 받으며 찾아온 푸링 사범대학의 영어교사는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과 생경한 인종, 문화, 체제의 벽을 허물어 간다.
저자는 바로 중국의 본심을 보는 밝은 눈을 가졌다. “그들에게 ‘개방’은 역사의 분수령을 이루는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그들의 개혁에는 옛 소련과 달리 정치성이 노골적으로 배제돼 있다”거나, “미국에서의 교육은 일종의 게임이다. 하지만 이곳 학생들의 지성은 아직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었다”는 식으로 나름의 이문화간 커뮤니케이션(intercultural communication)의 생생한 사례집을 만든다.
그의 글은 과장하지도, 지나치지도 않는다. 양극단의 체제, 문화, 인종적 선입견을 극복해가는 동질감과 이질감을 애써 ‘나는 그들은 안다’는 오만함으로 위장하지 않는다. 드디어 “학생들과 나는 모두 망명객이 됐다. 학생들은 중국 사회주의 건설 수업에서 도망쳐 왔고, 나는 탈구조주의를 피해서 왔다”는 감상을 얻을 때까지도 그랬다.
저자는 적어도 허접스런 삶의 부산물들이 양쯔강으로 흘러들어 동색이 되고마는 강촌의 이치를 터득한 것이다. 이만하면 현대 중국의 ‘창’은 그 강물에 비춰진 푸링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출판가에 ‘중국’이 넘쳐나지만 진짜 중국은 그곳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한국의 본심’도 세상의 좌판이 꽉들어찬 서울이 아니라 섬진강 어귀, 혹은 낙동강이 거쳐가는 어느 작은 도시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