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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42·성공회대 연구교수)씨의 <중국 근현대 사상의 탐색>은 서방 제국주의의 충격으로 인해 전통사상의
껍질을 깨고 나온 현대 중국 지식인들의 고민을 들여다본 책이다. 지난 10년 동안 이 주제를 두고 지은이가 발표한 8편의 논문과, 왕후이 등
현대 중국의 지식인들과 나눈 대담을 함께 묶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지은이는 신해혁명(1911) 전후 활동한 캉유웨이, 서방의
사회진화론을 처음 받아들인 옌푸·량치차오·장빙린, 자유주의자로 묶이는 후스와 장둥쑨, 마르크스주의를 중국에 도입한 진두슈와 리다자오 등, 서방의
가치와 처음 충돌했을 때 보인 중국 지식인들의 다양한 반응을 몇 가지 사조로 묶어 보여준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벌어진 주관능동성 논쟁,
생산력주의 논쟁 등도 소개했다. 여기에 얼마 전 한국에서도 한바탕 유행한 ‘유교 자본주의’와 ‘아시아적 가치’ 문제도 다뤘다. 신해혁명 전후
서방에서 처음으로 중국에 수입된 사상은 ‘사회진화론’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한 이 이론은 “국가, 민족, 개인간의 약육강식을
합리화”하고 “목적론적” 역사관을 지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근대성 논리”다.
이 관점에 서면, ‘전근대사회’는 빨리 ‘강자’인 서방
자본주의를 배우는 게 상책이라는 결론에 이를 뿐,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시각은 얻기 어렵다. 처음 사회진화론을 중국에 소개한 옌푸와
량치차오는 그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지만, 중국 고전에 밝았던 장빙린은 사회진화론에 장자의 상대주의를 결합해 ‘문’과 ‘야’의 이원론을
제시했다.
사회진화론의 관점에서 서방은 ‘문’에 이르렀지만, 아직 ‘문’에 이르지 못한 ‘야’에 처해 있는 중국은 ‘문’의 “강요된
동일성의 논리에 저항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새로운 통찰이었다. 후스·량치차오 등 초기 자유주의자들이 급진적 사회 개혁에 소극적이라는 공통의
한계를 보인 반면, “민주주의가 반드시 사회주의적이어야 하는 것은 진정한 사회주의가 반드시 민주주의적이어야 하는 것과 같다”고 이해한 장둥쑨의
자유주의 또한 오늘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주목할 만하다.
그가 맹자가 말한 ‘자득’의 개념으로 자유를 이해했다는 점 또한 흥미로운 대목이다.
지난 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중국 지식인들의 고민은 한국의 그것과 거의 포개지거나 매우 밀접한 연관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서방(구체적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화와 부활하는 중국의 중화주의 등 냉전 이후 변형된 패권주의의 틈새에서 새로운 시각을 모색하는 독자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지식인들의 다양한 고민에 대한 지은이 나름의 평가기준이 뚜렷하지 않은 점과, 중국 전통 논리와
서방 논리의 충돌 속에서 새로운 시각을 모색한 작업에 대해 소극적으로 평가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
캉유웨이가 <대동서>에서 보인
전통에 대한 과감한 재해석, 자유를 ‘자득’으로 이해한 장둥쑨의 독특한 자유주의, 사회진화론에 ‘가감’을 행한 장빙린의 통찰 등, 서방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거기에 다른 사유를 더함으로써 새로운 논리를 찾는 작업을 제외하고서, 서방중심주의의 완고한 껍질을 깨는 길을 달리 찾기란
매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