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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접근하는 또 하나의 방법
2001년 5월 24일 기계공학부 199921183 김 은 미
흔히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줄거리뿐만 아니라 음악, 의상, 배경장치등을 통해 완벽하게 사회를 재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영화를 보면 중국사회를 간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중국 제5세대 감독으로 가장 중국다운 영화를 만든다는 장이모우 감독의 <인생>과 <귀주이야기>에 나타난 중국의 모습을 살펴보겠다. 영화 <인생>은 4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중국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 <귀주이야기>는 정확한 시대적 배경은 알 수 없으나 80년 후반에서 90년초사이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두 영화를 엮으면 40년대에서 90년초까지의 중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먼저 의식주 중 의복에 대해 살펴보겠다. 50년 이전에는 경제적 능력만 있다면 화려한 비단옷도 입을 수 있었지만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화력한 색깔과 문양의 옷은 사라지고 무채색계열의 옷이 주를 이룬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장려되었기 때문에 치마보다는 활동하기 편한 바지를 주로 입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6년 문화대혁명 후에는 의복양식이 하나로 통일됨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중국하면 떠오르는 회색빛의 인민복이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인들이 인민복을 입는 것은 아니다. <귀주이야기>를 보면 의복이 자유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향에서 시로 갈수록 더욱 다양하고 서양의 영향을 받은 의복이 등장한다. 몸에 쫙 달라붙는 바지나 바바리코트 등이 눈에 띈다. 중국의 식생활을 한마디로 하자면 '밀가루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중국 대륙의 크기를 고려하면 이렇게 단정짓기 어렵겠지만, 두 영화 모두 식사 장면에서는 국수나 만두를 먹는다. 특히 만두는 모양이 다양하고, 쪄서 그냥 먹기도 하고 뜨거운 물에 담궜다가 건져 먹기도 한다. 이렇게 밀가루 음식을 즐겨 먹는 이유는 자연환경이 쌀을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일거라고 추측된다. 중국의 가옥구조를 살펴보면 서양처럼 입식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온돌은 볼 수 없고 따로 난방기구를 둔다. <귀주이야기>에서 시에 있는 여관에 온돌과 비슷한 것이 있으나 우리의 온돌과는 사뭇 다르다. 또 다른 특징은 담장이 높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부귀가 사는 동네의 집들은 모두 벽돌로 담장을 높여 외부에서 마당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귀주이야기>에서 처럼 외지로 가면 우리나라의 농가처럼 싸리나무로 담장을 만들기도 한다. 가옥의 내부를 보면 방과 거실의 구분이 모호한다. 입식생활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중국의 전통 통과의례를 살펴 볼 수 있었다. <귀주이야기>에서는 우리의 백일이나 삼칠일처럼 아이가 태어난지 한 달이 되면 건강하게 자라라는 뜻으로 잔치를 한다. 처음으로 아이를 주위사람들에게 공개하는 행사이다.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 아이의 부모는 국수를 대접한다. 노란색 빨간색으로 곱게 차려 입은 아이는 빵으로 만든 고리를 통과해야 한다. 중국의 교통수단의 발달사도 볼 수 있었다. 40년대 국공 내전 시기에는 자동차가 사용되었지만 80년대까지 대중화하지는 못했다. 중국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은 자전거와 인력거이다. <귀주이야기>를 보면 여관 앞에서 자전거 주차장을 지키는 할머니가 이를 잘 보여준다. 중국인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의 의식 또한 엿볼 수 있다. 첫째 중국인들은 체면을 중시한다. <귀주이야기>에서 자신의 체면 때문에 사과를 하지 않는 촌장이 등장한다. 형식에 매달리고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자신의 이미지에 연연함을 알 수 있다. 둘째, 아직도 남아를 선호한다. 귀주와 남편과의 대화에서 "뱃속에 아이가 아들이 아닐지도 몰라요"라는 귀주의 대사나, 딸이 넷인 촌장이 "암탉이나 키워라"는 말에 발끈했다는 것이 이를 잘 드러낸다. 가문은 아들을 통해서 이어진다는 유교의 영향이 아직도 중국사회에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역사도 알 수 있다. <인생>에서는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다. 毛澤東의 뺏지를 달고 집집마다 毛澤東의 사진을 걸고 거를 찬양하는 책을 선물하는 등, 모든 생활은 毛澤東으로 이어진다. 심지어는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고 서양하는 결혼마저 毛澤東 찬양 대회가 되어 버린다. 인민복을 입고 붉은 꽃으로 장식한 신랑 신부가 毛澤東어록을 들고서 사진을 찍는다. 혼수는 毛澤東 사진과 혁명 사상을 전하는 책이고 축가대신 "부모보다 모주석이 더 가깝다"는 노래를 부른다. 개인의 가치나 삶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전체에 의해 지배되는 개성이 상실된 사회이다. 전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한다. 과거의 모든 전통가치는 붕괴된다. 부귀의 딸인 봉하가 해산을 하기 위해 찾아간 병원은 문화대혁명의 피해를 잘 보여준다. 마땅히 있어야 할 의사는 반동으로 쫒겨나고 붉은 완장을 찬 학생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학생들은 아이는 잘 받았지만 봉하의 하혈에 속수무책이다. 결국 위급한 상황에서 경험이 부족으로 봉하는 죽고 만다. 과거와 단절된 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것은 현재 중국이 30년전 문화대혁명에 대한 평가로 볼 수 있다.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중국인들의 생활과 의식, 사회의 변화 속에 그들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야기만 쫓아서 보던 관점과는 다른 측면에서 영화를 바라보았다.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인 것 같다. 중국을 좀 더 알게 된 것도 좋았지만, 중국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에 더욱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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