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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米'의 삶에 투영된 중국사회를 엿보다
2006년 6월 7일 중어중문학과 200601142 김 소 라
《一个人的战争》이라는 책은 중국인 ‘多米’와 나를 만나게 해주었다. 나는 ‘多米’의 굴곡 많은 삶을 통해서 그녀의 나라 중국의 여러 단면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우선 소설 전반에 걸쳐 공산주의 국가로서의 중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동소유와 전체를 중시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념대로 중국은 모두가 개인이 아닌 인민들을 위해 일할 것을 강요했다. 지식청년이라 불리는 젊은이들은 모두가 하방되어 인민에게 봉사한다는 명분으로 농촌 등지에서 노동을 했다. ‘多米’는 논에 하루 종일 발을 담그고 있어 발이 짓무를 때면 어머니가 치료를 해주었다고 회상했다. 그녀의 짓물러서 고름이 흐르는 발을 생각하면서 나는 당시에 중국의 젊은이들이 겪었을 고된 육체적 노동을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한밤중이라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신속히 방공호로 대피해야 했던 모습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가가 전체를 위해 내리는 명이라면 방공호를 만들기 위해 흙을 파내는 일쯤이야 당연히 해야 했을 것이다. 어린 ‘多米’의 몸에 배었을 흙냄새를 생각하니 안쓰럽기까지 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국가의 배치를 기다리던 그녀의 모습에서도 역시 공산주의 국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의 능력으로 가고자 하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의 모습과는 다르게 그저 국가가 일할 곳을 배치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어느 서정시인의 시구를 베끼거나 연애소설의 한 구절을 베끼기보다는 당의 수령인 ‘ 毛泽东’의 어록을 베끼는 것을 관습이요, 자랑으로 여겼다. 그리고 자라면서 인민을 위해 목숨 바친 혁명가들의 삶을 그린 소설을 읽고 그런 내용의 영화를 보았다. 동시에 출세하기 위해서는 인솔간부나 주위의 지도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는 현실적인 모순도 나타나 있었다. 오로지 인민의 평등을 위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무색하게 하는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소설 속에서 ‘多米’는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교만하게 굴었다며 지식청년회의에서 인솔간부에게 비판을 받는다. 결국 그녀는 인솔간부였던 ‘李’씨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수 지식청년에 발탁되지 못했고, 영화사에 들어가는데도 지장을 받았다. 두 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지역간의 차이다. ‘多米’는 대중목욕탕의 ‘집단목욕’에 대해 아주 혐오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 그녀는 한곳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심지어 아주 야만스럽다고까지 여긴다. 반면 혼자 힘들게 온수를
떠와서 목욕하는 ‘多米’를 북방지역의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지역마다 다른 기후와 문화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지역마다
말투가 다르고 각양각색의 문화가 존재하는데 광활한 영토를 가진 중국이야 오죽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차이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많은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B읍을 떠나 N시로, 北京으로 가기를 소망하는 그녀의 바람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녀는 거듭 도시로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시골벽지와 도시의 격차는 엄청났다. 처음 N시로 갔을 때, 그녀는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물과 고층빌딩과 도시의 화려함에
감탄한다. 그렇게 인민의 평등을 주장하던 중국인데도 많은 빈부격차가 존재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아이러니이고, 어찌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격차들은 존재하게 되는가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 번째로, 나는 중국인들의 여성에 대한 시각이 어떤지 주의 깊게 살폈다. 세세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가부장적인요소들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N시 문예부의 편집장인 ‘昭衡’은 ‘多米’에게 여성작가가 성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자는 일찍 결혼하면 안돼’라고 말하는 ‘昭衡’과 ‘영원히 결혼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시를 쓸 거야’라고 다짐하는 ‘多米’. 결혼을 하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기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 아직도 가사노동과 육아가 전적으로 여성의 것이며 남편을 훌륭히 내조하는 것만이 여성이 해야 할 의무임을 강조하는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결혼생활이 보편적임을 드러내주는 부분이었다. 그런 결혼생활이라면 재능을 펼칠 수 없는 것도 당연할 터였다. 또, 방송센터의 세탁기광고를 보고 분노하는 ‘多米’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아내만이 고민하는 인공세탁기는 틀에 박힌 성역할과 결혼생활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네 번째로, ‘多米’가 천재적이었던 자신의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에서는 당시의 중국 교육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었다. 문화대혁명 이후 부활한 대학입학시험에 대한 내용들을 보면, 고등학생들뿐만 아니라 희망을 품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대단한 열의를 보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움에 대한 욕심과 능력에 따라 보상받고 싶은 열망은 우리나라의 교육열에 결코 뒤지지 않아 보였다. 또 한편의 논설문을 쓰게 하는 시험형식이라든가, 하루가 아니라 여러 날에 걸쳐 대입시험을 치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의과대학에 실습을 나온 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니를 회상하는 부분에서는 중국의 어머니들도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처럼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가지기를 바라기는 매한가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섯 번째, ‘多米’가 취직을 한 후 모은 돈으로 중국의 각지를 여행할 때는 중국이 참으로 넓은 곳이구나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새삼스럽게 느끼기도 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기차가 밤을 새서 달린다거나, 배를 타고 며칠씩이나 항해해야 하는 것이 그랬다. 그녀가 N시의 도서관에서 일할 때, 귀성휴가가 20일이나 되었다. 부모님을 한번 뵈러가는 것만으로도 며칠이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국을 모두 여행하는 것이 ‘多米’의 오랜 소망이었다는 말에서도 중국이 넓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실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한가운데 있었던 중국인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전쟁준비로 인해 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삼촌댁에서 머물면서 가고 싶었던 학교도 가지 못했던 ‘多米’의 어릴적 모습은 6.25전쟁 이후의 궁핍했던 우리나라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多米’가 N과의 연애로 인한 고난을 겪은 후에서야 문학의 번영을 이룬 것이 문화대혁명과 중국의 관계와도 같다고 말했던 한 친구의 말에서는 불안정과 혼란, 고난을 겪고 새롭게 탄생하는 신중국의 모습이 눈앞에 보일 것만 같았다. 《一个人的战争》이라는 한 권의 책 속에서 ‘多米’가 고백하는 삶에 비춰진 중국과 중국인을 찾고, 알아가고 느껴보았다. 북한을 연상시키는 공산주의국가 중국의 모습, 北京에 가는 것이 최종목표라던 그녀를 통해 본 지역간 격차와 보이지 않는 신분 차이, 사라지지 않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시각, 중국영토의 광활함을 새삼 느꼈던 시간과 격변의 역사를 거 쳐 온 흔적들을 발견하면서 중국에 대해 조금 더 배울 수 있었다. 앞으로 내가 알아나갈 중국에 대한 지식들에 이번에 얻은 많은 것들이 토대로 작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읽은 책: 린바이林白 지음, 박난영 옮김, 《한 여자의 전쟁 一个人的战争》, (서울: 문학동네, 2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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