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14._국제신문/이제명의 오션 드림] 해양 질서 재편, 어디서부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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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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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명의 오션 드림] 해양 질서 재편, 어디서부터 올까
2020년 약 3억 t이었던 글로벌 LNG 거래량이 2030년에 5억 t을 넘어설 전망이다. LNG를 운반하는 전용 선박인 LNG 운반선은 선박 건조 역사상 기술적으로 가장 복잡한 선박이다. 초저온기술, 친환경 연료기술, 자율운항까지를 아우르는 ‘풀 패키지’ 선박이고 ‘조선기술의 꽃’으로 불린다. 이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점유율은80% 이상, 기술 수준은 독점에 가깝다. 단순 수주량이 아니라, 건조 및 운항 전체를 다루는 기술 우위가 ‘조선해양 최강국’인 우리의 진정한 힘이다.
리처드 기어와 줄리어 로버츠의 열연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줬던 1990년 영화 ‘프리티 우먼’. 영화속 냉철한 남자 주인공 에드워드가 인수합병 하려던 기업은 조선소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영화 내용처럼, 수익성 악화와 인력 유출로 수많은 조선소가 기업사냥꾼의 표적이 되어 선박 건조 공장들이 사라져갔고 그 이후미국 조선업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의 바탕에 깔린 ‘조선산업 쇠퇴’라는 당시 미국의 시대상이 오늘날 트럼프 발 관세 협상이 촉발한 국제 정세와 겹치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
최근 미국은 조선산업 붕괴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해양패권 상실로 이어진다는 점을 인식하고 전격적으로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해양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에게 조선산업의 몰락은 국방·에너지·물류를 아우르는 종합 전략 수행 능력을 잃는 것과 다름없다. 40척이 넘는 쇄빙선을 운용하며 북극해를 전략 자산화한 러시아가 ‘항해 가능성’이라는 물리적 통제력을 무기로 북극항로를 사실상 장악한 상황이 미국의 위기의식에 한층불을 지폈다.
이런 가운데 세계 1위 조선산업을 보유한 우리나라가 미국의 주목을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미국의선택은 예상했던 대로다. 관세 협상을 통해 결정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중 조선산업에만 무려 1500억 달러가 투입된다. 이 거대한 투자가 단순히 공장 몇 곳을 늘리는 데 그칠지, 아니면 무너진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는 자양분이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라는 구호를기점으로 협상에 나섰던 미국의 선택이 조선산업 최강국인 우리나라에 또 한 번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19세기 영국이 클리퍼선과 증기선의 혼합 설계를 선점했을 때, 대양 무역의 규칙은 런던이 정했다. 20세기 중반 일본이 초대형 원유 운반선을 장악했을 때, 원유 운송의 글로벌 주도권은 일본에 넘어갔다. 조선산업 후발주자 한국은 미래에 눈을 돌렸다. LNG 운반선 기술자립에 40년을 투자했고, 오늘날 전 세계가 우리나라에 의존하게 되었다. 지금이 바로, 세계가 주목하는 K-조선의 LNG 기술 우위를 ‘차세대 선박’ 전반으로 확장할 수있는, 그야말로 절호의 순간이다. 영원한 1등은 있을 수 없다.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선점해야 하는 이유다.
북극항로는 이러한 ‘선점 전략’을 입체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다. 혹한 환경 운항, 장거리 자율운항, 극지 내구성, 복합 물류 허브 운영 등 새로운 기술 수요가 북극항로 운항 선박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부산항이 북극 전용 터미널과 환적·연료 공급·수리·정비 기능을 갖춘 ‘전진기지’로 자리 잡으면,우리는 단순한 이용자를 넘어 항로의 운영자이자 규칙 제안자가 될 수 있다. 이는 곧 21세기형 해양 질서를 설계하는 일이다. 대항해시대의 포르투갈과 스페인, 수에즈운하의 영국, 파나마운하의 미국처럼 선박과 항로를동시에 장악한 국가만이 세계 해양 질서의 주도권을 쥔다. 세계 최고의 선박기술은 이미 손에 쥐고 있으니 남은 것은 항로다. 항로에는 기항지가 있어야 한다.
한 번 구축된 기술과 규칙의 우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북극항로와 미래 선박 시장에서 첫 번째 닻을 내리는 순간은 곧 새로운 역사가 되며, LNG 시장에서 그랬듯 시장의 규칙을 설계하고 이익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주도권을 손에 넣게 된다. 지금 가진 것을 토대로 삼되, 시야는 10년, 20년 후를 조준해야 한다. 단순히 지정학적 항로 활용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항로에 투입될 선박 시장까지 선점할 전략이 필요하다. 선박을 이용한에너지 운송은 해양산업 재화 창출의 핵심이며, 20년 후 에너지 시장의 모습을 가늠해 본다면 결론은 자명하다. 기회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지금이 움직일 때다.
트럼프 행정부의 ‘OBBBA(One Big Beautiful Bill Act)’ 법안이 통과되었다. 군함 위주 초기 투자지만 총 327억달러가 조선산업에 투자된다. 미국 조선업 부흥의 동력이 되고, 동시에 한국 조선업체의 미국 시장 진출 모멘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극항로, MASGA, OBBBA. 동시다발적 변수들이 너무 많지만 해양 질서의 재편이이루어질 것은 자명하다. 가수 싸이의 ‘오빤 강남스타일’을 넘어서는, ‘OBBBA는 한국 스타일’을 이끌어 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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