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과학 발전은 “인성의 실현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 부산대학교 개교60주년기념 국제학술대회 --

 



 

 

溫儒敏

温儒敏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현대 중국의 현실주의문학사 新文學現實主義流變》(1988)와 《중국현대문학비평사 中国现代文学批评史》(1989) 외에도 《中国现代文学三十年》(1998. 공저), 《文学课堂:温儒敏文学史论集》(2002), 《文学史的视野》(2004) 등 많은 저서가 있다.





2006년 5월 11일(목) 14:30-15:30

부산대학교 본관 대회의실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루쉰: 과학 발전은 “인성의 실현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원  루  민  (베이징대학교 교수) 溫儒敏



루쉰은 20세기 중국의 가장 위대한 문학가이며 사상가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루쉰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그중 어떤 이들은 루쉰을 완전 뒤집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루쉰의 비판이 아주 맹렬하기 때문에 이를 중국문화에 대한 완전한 부정으로 이해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20세기 중국 문화에는 단절이 나타났는데, 루쉰을 포함한 5․4 신문화운동 선구자들의 급진적인 성향과 큰 관계가 있다. 게다가 최근 중국에는 ‘국학 붐’이 일기 시작하여 전통문화 연구를 제창하면서 동시에 루쉰과 5․4신문화운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함께 커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매우 복잡한데다 짧은 토론으로는 매듭짓기 힘들므로 여기서는 루쉰이 중국 전통문화에 대해 모양을 달리한 단락의 사고를 회상하되, 특별히 그가 주목하였던 과학발전과 인성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루쉰의 사상가로서의 뛰어난 면모도 더불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루쉰은 전통문화에 대해 철저한 반대와 비평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이것이 문화의 변화와 혁신의 필요과정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는 전통문화에 대해 일종의 총체적 느낌을 갖고 있다. 곧 기본적으로 중국 전통문화는 인간을 존중하지 않으며 활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전통을 총체적으로 여전히 사회의 진보를 막고 있는 것이라고 가정하여, 철옹성을 타파하려 했다. 그는 이것을 단호한 태도로써 큰 소리로 고함쳐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였고, 심지어 지나칠 정도가 되었다. 루쉰은 전통의 중국 문화를 하나의 덩어리로 간주하여 비판하였으며, 그는 전통문화 중 봉건성과 낙후성 같은 것들에 대해 더 이상의 여지를 남겨두지 못할 정도로 특히 격렬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는 봉건의 속박을 타파하여 사람들을 깨우침으로 이전의 모양으로 낙오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루쉰은 전면적으로 전통을 부정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이러한 전면적 부정은 역사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루쉰은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경험은 매우 심오하다. 그는 중국문화의 가장 큰 병은 인간에 대한 억압과 개성, 생명에 대한 억압, 창조력에 대한 억압이라고 보고, “대단한 국민이 힘을 다해 융통성 없는 전통에 아첨하여 변혁을 불가하니 쇠약하고 부패하여 아무런 정력도 없게 되었다”1)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는 맹렬하게 공격하여, 전통의 속박을 타파하려 하였다. 루쉰은 언제나 어떻게 하면 “인성을 실현함으로 완성”2)하게 되는가의 각도로써 사회문제, 문화문제를 고찰하였으며, 그의 어떤 격렬한 비판도 모두 인성의 회복에 착안한 것이었다.

 루쉰은 또한 자신의 극단적인 것에 대해 말하기를 전혀 꺼려하지 않았는데, 그는 어떤 필요성 있는 극단을 통해 속박을 타파하고, 사상을 활성화시켜 해방을 이끌려고 했기 때문이다. 루쉰은 중국의 국정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중국 문화의 병폐를 아주 잘 이해하였다. 그는 “중국인의 성정은 언제나 타협하고, 굽히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 방이 너무 어두우니 여기에 창을 하나 내야겠다고 하면 모두들 분명히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지붕을 뜯어내야겠다고 한다면 그들은 타협하려고 들어 창문을 내고자 할 것이다. 더 강한 주장이 없다면 언제나 평화적 개혁도 행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루쉰은 심지어는 중국에서 한 가지 일을 하고자 하는 것도 너무 어려우며 “탁자 하나 옮기는데도 피를 흘린다”3) 할 정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도 역시 일종의 체험으로 총체성의 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루쉰은 중국인에 대해, 중국의 문화의 이로움과 폐단에 대해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다. 실제로 중국 전통문화 중에 버려야할 부분이 많이 있으며 총체적으로 볼 때 이러한 부분들이 현대 중국을 변혁에 적응키 어렵도록 한 것이다. 루쉰은 전통 문화의 현대 전형에 대하여서, 회의를 가지고 가슴을 태우는 것이었다.

그러한 루쉰과 5․4세대의 사람의 과격성이 중국문화의 단절을 가져왔다고 보는 관점은 단편적 생각으로, 이러한 지적은 또한 역사의식이 결여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전 세기 초로 돌아가 이러한 특정한 역사 언어 환경 속에서 문제를 토론할 수 있다면, 우리는 루쉰의 전통에 대한 공격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그러한 단호하다 못해 심지어 과격하게 비판하는 태도를 이해함과 동시에 루쉰의 과격한 반전통의 다른 면-문화 전형 탐구에의 공헌-을 잊을 수 없게 된다.

루쉰은 문화 전형에 대한 고민과 사색은 관련되는 부분이 너무 광범위하므로, 여기에서는 그중 일부분을 다루고자 한다. 그것은 루쉰의 과학 발전과 인성 관계에 대한 사색이다. 그의 8,90년 전의 어떤 사색은 현재에 보아도 아주 가치가 있으며 심지어 지금에 비춰 보아도 아주 예리한 경계성을 가지고 있어서 마치 지금의 중국 상황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루쉰은 젊은 시절 난징수사학당에서 기관사 공부를 했고, 후에 일본으로 가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이공과 출신이었으나 후에야 국민 정신을 치료하기 위하여 비로소 뜻을 세우고 문학 창작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루쉰은 사실 과학과 인문의 결합부로 문제를 토론할 가장 적합한 자격을 갖추었다. 그는 일찍이 세계 과학의 발전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으며 심지어 많은 과학과 관련한 글, 예를 들면 《중국지질약론 中国地质略论》,《과학사교편 科学史敎篇》,《문화편지론 文学偏至论》 등을 쓰기도 하였는데, 모두 지난 세기 초에 쓴 것들로 당초엔 영향이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후에는 거의 아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볼 때에, 이러한 논저는 모두 진보적인 것들로 루쉰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연결되어 경고하고 있으며, 반드시 이 문화거인이 우리에게 남겨준 사상적 자원을 귀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루쉰이 이러한 글을 쓸 당시 중국은 아주 낙후되어,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하며, 문화적 정신적으로도 거의 붕괴된 상황이었다. 적잖은 선구자들이 서양에서 배울 것을 제시하고, 과학 기술이 나라를 구할 것을 기대하였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서양 문명은 많은 폐단이 있음을 보고 동양 문명만을 최고로 여겨서, 최후에는 동양 문명만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기도 하였다. 루쉰은 수없이 많은 논쟁의 과정에서 비교적 독보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서양을 배울 것을 반대하지 않으며 과학기술로 나라를 일으키되 더 중시해야 할 것은 바로 ‘사람을 세우는 것(立人)’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당연히 과학과 ‘사람을 세우는 것’은 대립적이라는 것, 물고기와 곰 발바닥을 다 얻을 수는 없음을 이해할 필요조차 없으나, 인문학자로써의 루쉰 그의 의견은 과학 발전과 동시에 더 중시해야 할 것은 민족정신의 새로운 건설이라는 것이다. 루쉰은 아주 멀리 내다보아, 세계과학의 발전은 큰 추세이며 중국을 포함한 세계는 반드시 크게 개혁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개혁은 플러스 마이너스의 양면일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 면은 과학 기술의 진보는 당연히 세계에 좋은 점을 가져다 수 있는데, 루쉰은 그것을 세계를 비추는 신성한 빛이며, 과학 기술이 엮어 온 물질문명은 인류 사회 진보의 한 날개라고 하였다. 그러나 루쉰은 또 과학이 국민정신 개조에 미치는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없으며, 과학이 발달한다 해서 생활의 질이 반드시 높아지며 인간의 본질도 따라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게다가 그는 과학, 물질문명이 무절제하게 급속도로 발전하는 것이 인생에 대해 일종의 위협을 줄 수도 있다는 의문을 가졌으며, 그는 만약 단편적으로 과학과 물질 문화만을 쫓는 것은 마이너스의 영향과 잠재적인 위해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과학사교편》과 《문화편지론》, 두 편의 글 중에서 충분한 설명을 얻을 수 있는데, 당시는 1907년으로 5․4 신문화 운동이 아직 서막도 열리지 않은 시점이다.

루쉰은 그의 글 중에서 아주 명확하게 한 가지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즉 과학의 발전은 반드시 ‘인성을 실현함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 발전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인류에 더욱 아름다운 생활을 위한 것, 인성의 온전함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는 과학과 물질문명의 발전을 과도하게 숭배하며 정신의 해방과 새로운 건설을 홀시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루쉰은 이렇게 사람들을 일깨운다. ‘어찌하여 온 세상으로 하여금 지식을 숭배할 것, 인생은 반드시 마르고 쓸쓸하게 돌아감을 생각하게 하지 않는가. 이와 같이 하여 오래되면, 즉 위의 것을 찬미하는 감정은 옅어질 뿐 아니라, 명민한 사상도 없어진다. 과학이라는 것 또한 함께 없어지게 된다.’4) 뜻을 풀이하자면, 지식이나 과학이라는 것들이 비록 중요하다고는 하나 과도하게 추종하여서는 안 되며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서는 더더욱 안 되는데, 그러지 않으면 인성의 온전한 발전, 이 근본은 땅에 떨어지고 말아, 그것은 주객이 전도되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루쉰이 이렇게 문제를 제기한 것은 결코 위협하는 말로써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前车之鉴”의 생각이 있었다. 루쉰은 19세기 후엽 서방 사회의 교훈을 보았다. 그 때 유럽 과학 기술 발전은 이미 과학과 물질문명 숭배 과도기의 폐단이 드러나고 있었는데, 루쉰의 말을 빌리자면, 곧 ‘무릇 모든 사물, 천지가 단순화되지 않아, 내일이 이로 인해 쇠퇴하게 되니, 뜻은 평범한 곳으로 흘러가고, 인간은 오로지 객관적 물질 세계를 향하나 주관적 내면 정신은 하나도 남지 않아도 오히려 개의치 않는다’, ‘물욕이 가리면, 사회는 생기가 없어져 진보가 멈출 것이기 때문에, 속임과 거짓, 죄악이 그것을 이용하여 시작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인간 성정의 빛으로 하여금 더욱 늘어날수록 암담해지게 한다’이다. 루쉰은 서양이 당시에 가지고 있던 폐단인 물욕 팽창이 가져오는 인문의 쇠락은 일종의 보편적인 폐단(通蔽)이라고 보았으며, 보편적인 것이어서 한번 나타나면 쉽게 제어할 수도 없는 시대병 혹은 문명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상, 루쉰의 우려는 대략 100년이라는 세월동안 세계 과학 기술 발전이 치른 거대한 대가로 증명 된 바이다.

하지만 루쉰은 물질문명의 淸敎主义를 억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서양의 과학과 물질문명은 결국 사회진보의 일면을 대표하고 있으며 이는 하나의 추세임을 인정하였다. 바로 이 점이 루쉰과 당시의 서양에 나타난 폐단을 감시만 하고 있던 이들, 맹목적으로 동방 문명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국수파나 개량파와 완전히 다른 점이다. 루쉰은 중국의 출로는 바로 전통을 깨뜨려 또 다른 방도를 개척하고, 서양에서 과학과 물질문명을 배우되 반드시 서양의 교훈을 주의하여 흡수하여야 하며, ‘과학만능’으로 여겨서도 안 되고, 서양에서 전해올 수 있는 ‘새로운 전염병’을 항상 경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5․4이후의 ‘과학과 현학’의 논쟁 중, 루쉰은 현학파가 소위 ‘동방정신문명’이라는 것이 ‘서양물질문명’에 앞선다고 맹목적으로 여기는 논조에 대하여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하였으며, 또한 ‘과학적 인생관’의 표현법에 대해서도 명백하게 찬성하지 않았다. 루쉰의 사상은 시대에 앞선 것이었다. 하지만 그를 한 사상가로 볼 때 가장 가치가 있는 점은 과학 발전과 물질문명을 도입하도록 일깨움과 동시에, 그 바탕에 인간이 있으며, 인간이 있는 해방과 민족정신의 중건을 잊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학 기술과 인성의 관계를 논하기에 이르러서, 루쉰은 매우 진지해진다. 루쉰은 과학 발전이 반드시 ‘인성을 실현함으로 완성되어지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또한 인간을 근본으로 삼아 과학 연구를 하고 과학 기술의 작업을 수행하되, 최종적 목표는 인간의 총체적 생활의 질을 높여주기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매우 중요하다. 루쉰은 과학 물질문명 숭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에 대한 존중에는 관대하였다. 그는 물욕 팽창의 결과 문제를 말할 때, 물질의 발전,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가속도의 발전을 야기할 것이라고 보았으며, 만약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일종의 보편적인 병(通病)이 쉽게 나타나, 인문정신, 인성의 배려도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루쉰은 물욕 팽창이 가져올 인문 쇠락은 일종의 보편적인 폐단으로써, 보편적인 것이며 시대병 혹은 문명병이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루쉰은 이러한 보편적인 병이 나타나면 쉽게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예를 들어 환경 생태 문제, 성실, 신의의 문제, 도덕 기초의 파괴 문제 또 안전감 문제들이 지금 모두 드러났으며 심각하다. 루쉰은 불행히도 말을 정확히 알아 맞추었다.

이 몇 년 간 중국은 과학 기술과 경제에 모두 큰 발전이 있었으며, 사람들의 물질생활 조건 역시 크게 개선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거대한 진보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친 대가를 치르진 않았는가? 우리는 경제 발전, 과학 기술 추진과 동시에 ‘인간을 근본으로 삼는 것’에 주의를 두지 않은 것은 아닌가? 실제로 문제는 아주 크다. 루쉰이 당시에 말한 보편적인 폐단을 혹자는 ‘문명병’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지금 현재 거의 드러났다. 루쉰은 물욕 팽창의 결과는 일종의 보편적인 병을 양성하여, 인문정신, 인성의 관심에도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지금이 바로 그러하지 아니한가? 예를 들어 환경 생태 문제, 성실, 신의의 문제, 도덕의 돌파 문제 또 안전감 문제들이 지금 모두 드러났으며 심각하다. 루쉰은 불행히도 말을 정확히 알아낸 것이다. 어떤 지역, 어떤 분야에서는 발전만 한다면, 돈만 벌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뭐든 상관없다는 식이 너무도 만연해있다. 이러한 것은 최악의 결과를 빚어낼 것이다. 언제나 말하듯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교훈을 얻는 식이나 너무 많이 치르는 것도 면할 수 없고, 얻는 대가도 너무 크게 된다. 루쉰이 제기한 현대 과학 기술 발전의 근심은 결코 기우가 아니다. 욕망의 팽창, 그리고 사람이 때때로 가지는 사악한 호기심, 그것은 모두 과학 기술 발전에서 인류가 제어할 수 없는 재난을 가져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클론 인간을 보자. 현재 미국, 영국 뿐 아니라 수많은 국가에서 클론 인간을 허용할 수 없다고 성명을 발표였지만, 나는 언젠가는 일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인간을 복제해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인류의 사악한 일면으로 그 결과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경제 발전 과정 중, 물욕의 폐해나 인문의 손실, 도덕 붕괴의 현상은 그다지 두렵지 않으나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문제의 결과에 대한 경각심의 부족, ‘인성을 실현함으로 완성하자는’ 발전관의 결여이다. 살펴본 바, 어떻게 인간의 성정을 고취시키고, 과도한 물질 숭배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현대화를 추진 과정 중에도 서양이 이미 겪었던 소위 문명병이라는 것을 피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은 분명 해결해야할 큰 문제이다.

최근 중국은 과학적 발전관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는데, 문제의식과 위기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나, 이는 수많은 대가를 치른 후의 자각이었다. 나는 이러한 진실을 추구하는 것 이 외에도 경제 성장 중의 각종 충돌을 잘 조율하여야한다고 생각하며, 또 중요한 것은 바로 첫 번째로 명확하게 ‘사람을 근본을 삼는(以人为本)’ 발전 전략을 내세우는 것이다. 현재 경제는 상승세이며 물질생활도 개선되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원망을 갖고 있는데, 대부분이 인문 정신의 실추, 가치 기준의 혼란, 도덕 와해 등 방면의 문제지만, 실은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발전의 부조화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데 이는 ‘사람을 근본을 삼는’ 이 관념은 우리에게 이미 흐려진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위로부터 아래까지 모두 ‘사람을 근본을 삼는’ 의식을 다시 복습하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점에서, 만약 지난 100 여 년 간 중국에서 나타난 과학과 인생에 관한 수많은 쟁론을 회고해본다면 이전 사람들이 이미 우리에게 적지 않은 지혜의 자원을 남겨두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루쉰 그는 문학가이자 동시에 아주 심도 있는 사상가였는데, 그의 현대 중국 문화 전형에 대한 많은 독특한 시각, 과학적 발전관에 대한 도입선적인 계시도 있는데, 복습을 한 번 해보아도 괜찮을 것이며 그 중에서 혹시 새로운 계시를 얻을 지도 모른다. 루쉰이 그 때 제시하고 생각했던 일부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깨우치고 있듯이, 우리는 반드시 루쉰 및 100 여 년 간 중국 변혁 중 성취한 사상 유산을 귀중히 여겨야 할 것이며, 경박한 분위기에 좌우되지 말아서, 이러한 귀중한 문화 자원을 경솔하게 부정하거나 버리지 않아야 한다.

(김유경 옮김)



2006년 5월 11일 부산대학교 개교60주년기념국제학술대회


 

 

鲁迅: 科技发展需“致人性以全”


温  儒  敏  (北京大学 敎授) 溫儒敏



鲁迅是20世纪中国最伟大的文学家和思想家。 但在当今中国, 对鲁迅的理解是各式各样的。 其中有的对鲁迅采取颠覆的态度。 他们的“理由”之一, 就是认为鲁迅对中国传统文化的批判太厉害了, 几乎就是全盘否定;而20世纪中国文化出现所谓“断裂”, 跟包括鲁迅在内的五四新文化先驱者们的“激进”大有关系。 最近中国又掀起“国学热”, 当然是提倡传统文化的研究, 于是对鲁迅和五四的批评的声音也就加大了。 这种社会现象很复杂, 这里不可能展开讨论, 我只想回顾一下鲁迅对中国传统文化转型的一些思考, 特别是他所关注的科技发展和人性的关系问题。 也许从这里也可以了解鲁迅作为思想家的特别之处。

鲁迅对传统文化的确是采取彻底反对和批评的立场的, 他认为这是文化转型的必要过程。 鲁迅对传统文化有一种整体感受, 他基本上认为中国传统文化是不尊重人的, 是缺少活力的。 当传统作为一个整体仍然拘跘者社会进步时, 要冲破“铁屋子”, 鲁迅只好采取断然的态度, 大声呐喊, 甚至是矫枉过正。 鲁迅把传统的中国文化作为一个整体来批判, 他对传统文化中封建性、落后性的东西批判得非常厉害, 完全不留情面, 不留余地了。 但这是为了打破封建禁锢, 提醒人们不要落入复古的老套。 可以说鲁迅是全盘否定传统, 但是这种全盘否定, 是有历史理由的。

鲁迅对中国文化的了解和体验是非常深刻的。 他认为中国文化最大的病, 是对人的压抑, 对个性对生命的压抑, 对创造力的压抑, “老大的国民尽钻在僵硬的传统里, 不肯变革, 衰腐到毫无精力了”1)。 所以他要勐烈攻打, 冲破传统的束缚。 鲁迅总是从如何“致人性以全”2)的角度考虑社会问题、文化问题, 他的任何激烈的批判都是着眼于人性的复归。

鲁迅也并不讳言自己的偏激, 他是要通过某种必要的偏激, 来打破禁锢, 激活思想, 引导解放。 鲁迅太了解中国的国情, 太了解中国文化的弊病了。 他说, “中国人的性情是总喜欢调和、折中的。 譬如你说, 这个屋子太暗, 须在这里开一个窗, 大家一定不容许的。 但如果你主张拆掉屋顶, 他们就会来调和, 愿意开窗了。 没有更激烈的主张, 他们总连平和的改革也不肯行。”鲁迅甚至还说, 在中国办一件事太难了, 连“搬动一张桌子也要流血”。3) 这也是一种体验, 一种整体性的把握, 鲁迅对中国人, 对中国的文化的利弊, 的确看得很透。 中国传统文化中确实有很多糟粕, 整体上很难适应现代中国的变革。 鲁迅对于传统文化的现代转型, 是有怀疑, 有焦虑的。

那种认为鲁迅和五四一代人的偏激造成了中国文化“断裂”的观点是浮浅, 这种指责也是缺少历史感的。 如果我们能够回到上个世纪初那种特定的历史语境来讨论问题, 我们就比较能够理解鲁迅对于传统的攻打, 他那种决绝甚至是偏激的批判态度, 同时也不会忘记鲁迅“偏激”反传统的另一面——对文化转型的探求的贡献。

鲁迅对文化转型的焦虑与思索, 涉及面很广, 我这里就其中一点来讨论, 那就是鲁迅对于科技发展与人性关系的思索。 他在八九十年前的某些思考, 现在看来是非常有价值的, 甚至在当今也还有尖锐的警示性, 好像就是针对当下中国的情形来说的。

鲁迅年轻的时候在南京水师学堂学水手, 后来到日本学医, 他最初是理工科出身的, 后来为了疗救国民精神, 才立志转向文学创作。 鲁迅其实最有资格从科技与人文的“结合部”来谈论问题。 他早年非常关注世界科技的发展, 甚至写过很多与科技有关的文章, 比如《中国地质略论》、《科学史教篇》、《文化偏至论》, 等等, 都是上个世纪初写的, 当初影响不大, 后来几乎不为人所知。 但今天看来, 这些论着都很“前卫”, 鲁迅的问题仍然缠绕和警示着我们, 应当珍视这位文化巨人留给我们的思想资源。

鲁迅写这些文章的时候, 中国非常落后, 经济上贫弱不堪, 文化上精神上也几乎垮了。 不少先驱者提出向西方学习, 期盼能“科技救国”。 也有人看出西方文明很多弊病, 认为只有东方文明最好, 幻想最终还是要靠东方文明来“挽救”世界。 鲁迅在诸多争论中显得比较独立。 他不反对学习西方, 科技兴国, 但更看重的是“立人”。 我们当然不必理解为科技和“立人”是对立的, 鱼和熊掌不可兼得, 鲁迅是人文学者, 他的意见是在科技发展的同时更注重民族精神的重建。 鲁迅看得很远, 意识到世界科技的发展是大趋势, 必然极大地改变世界, 包括改变中国。 这是不可逆的趋势。 但他意识到这个改变可能是正负两方面的。 一方面, 科技进步当然是可以给世界带来好处, 鲁迅说那是照耀世界的神圣之光, 科技带来的物质文明是人类社会进步的一翼。 但是鲁迅又说, 不能过高地评价科学对国民精神改造的价值, 不是科技发达了, 生活质量就高了, 人的素质就高了。 他甚至怀疑科学、物质文明无节制的极大发展, 可能会构成对人生的一种“威胁”, 他提醒如果片面地追求科学和物质文化, 可能带来负面的影响和潜在的危害。 这些观点在《科学史教篇》和《文化偏至论》两篇文章中得到充分的阐述, 当时是在1907年, 五四新文化运动还没有拉开序幕。

鲁迅在他的文章中非常明确地提出一个观点: 科学的发展必须 “致人性以全”。 科学发展为了什幺? 还是为了人类更加美好的生活, 为了人性的健全。 所以他反对过分崇奉科学和物质文明的发展, 而忽略精神的解放与重建。 鲁迅这样提醒人们: “盖使举世惟知识之崇, 人生必大归于枯寂, 如是既久, 则美上之感情漓, 明敏之思想失, 所谓科学, 亦同趋于无有矣。”4) 意思是说, 知识呀、科学呀, 虽然重要, 但不应当过分推崇, 更不能当成人生的目的, 否则会丢掉人性健全发展这一根本, 那就本末倒置了。

鲁迅这样提出问题, 绝非危言耸听。 他是有“前车之鉴”的。 鲁迅看到了十九世纪后叶西方社会的教训。 那时欧洲科技发展已经显出对科学与物质文明崇奉逾度的弊果, 用鲁迅的话来说, 就是“诸凡事物, 无不质化, 灵明日以亏蚀, 旨趣流于平庸, 人唯客观之物质世界是趋, 而主观之内面精神, 乃舍置不之一省。” “物欲来蔽, 社会憔悴, 进步已停, 于是诈伪罪恶, 蔑弗乘之而萌, 使性灵之光, 愈益就于黯淡”。 鲁迅指出物欲膨胀所带来的人文衰落, 当然是指西方当时的社会弊病, 鲁迅认为这是一种“通蔽”, 是普遍的, 一经出现, 就不容易控制的, 这也就是时代病, 或文明病。 事实上, 鲁迅的担忧是被近百年来世界科技发展所付出的巨大代价所证实了。

但鲁迅又不是抵御物质文明的清教主义, 他承认西方的科学和物质文明毕竟有代表社会进步的一面, 或者说这是一种趋势。 这一点, 鲁迅和当时那些只盯着西方出现的弊端, 盲目以为只有东方文明可以救世的国粹派和改良派是不同的。 鲁迅认为中国的出路还是要冲破传统, 另辟蹊径, 向西方学习科学和物质文明, 不过也应该注意吸取西方的教训, 不能以为“科学万能”, 还应警惕从西方可能传过来的“新疫”。 在五四之后的“科学与玄学”的论争中, 鲁迅对玄学派盲目以为所谓“东方精神文明”胜于“西方物质文明”的论调固然不屑, 但也显然不赞同“科学的人生观”的提法。 鲁迅的思想是超前的, 不合时宜的。 但他作为一个思想家, 最有价值的是, 提醒在引进发展科学和物质文明的同时, 不忘记“根底”在人, 在人的解放和民族精神的重建。

在谈到科技和人性关系时, 鲁迅是非常谨慎的。 鲁迅说科学发展要注意“致人性以全”, 也就是以人为本, 做科学研究, 从事科技工作, 不忘记终究目标是为了提高人的整体生活素质。 这是非常重要的提醒。 鲁迅反对在崇奉科学物质文明的同时放松对人的尊重。 他说到了物欲膨胀的后果问题, 认为物质的发展, 科学的发展会引起人的欲望的加速度的发展, 如果不加注意, 就容易出现一种通病, 人文精神、人性的关怀, 可能会受到破坏。 鲁迅指出物欲膨胀所带来的人文衰落, 认为这是一种“通蔽”, 是普遍的, 是时代病, 或文明病。 而且鲁迅意识到这种通病出来以后是难以控制的。 比如环境生态问题, 诚信问题, 道德底线的突破问题, 还有安全感问题, 现在都出来了, 严重了。 鲁迅不幸而言中。

这些年我国科技和经济都有了大的发展, 人们物质生活条件也大大改善了, 毫无疑问, 这是巨大的进步。 但我们是否也付出过多的代价呢? 我们在发展经济推进科技的同时, 否注意做到“以人为本”了呢? 实际上问题很大。 鲁迅当年所说的“通弊”, 或者说“文明病”, 现在似乎都出来了。 鲁迅说物欲膨胀的后果会造成一种通病, 人文精神、人性的关怀, 可能会受到破坏。 现在不就这样吗? 比如环境生态问题, 诚信问题, 道德底线的突破问题, 还有安全感问题, 都出来了, 严重了, 鲁迅不幸而言中。 有些地区、有些部门只管发展, 只管赚钱, 别的理不了那幺多。 这就造成很坏的后果。 老是说“交学费”, 但未免交得太多, 代价太大了。 鲁迅提出的对现代科技发展的焦虑, 决不是杞人忧天。 欲望的膨胀, 还有人有时候有邪恶的好奇心, 它都可能会在科技发展里带来人类所不能控制的灾难。 比如说克隆人, 现在尽管美国, 英国很多国家都发表声明, 不准克隆人, 但我想迟早会有好事者把人克隆出来的, 这是人类邪恶的一面, 后果不堪设想。

在经济发展过程中, 有物欲来蔽、人文亏蚀、道德滑坡的现象并不可怕, 可怕的是对这些问题的产生缺少警觉, 缺少“致人性之全”的发展观。 看来, 如何张扬性灵, 克服过分崇奉物质的弊害, 如何在推进现代化过程中避免西方曾有过的所谓文明病, 的确是有待解决的大问题。

最近中国开始强调科学的发展观, 是有了问题意识和危机意识, 是付出了许多代价之后的自觉。 我理解这除了求真务实, 协调好经济起飞中的各种矛盾, 还有一点更重要, 那就是第一次明确提出“以人为本”的发展方略。 现在经济上去了, 物质生活改善了, 但人们仍然有许多抱怨, 多集中在人文精神失落、价值标准混乱、道德滑坡等方面, 其实也就是物质文明与精神文明发展不协调的问题。 要解决这些问题并不容易, 因为“以人为本”这个观念被我们所淡漠太久了。 看来是要补课, 上上下下都来培育“以人为本”的意识。 在这一点上, 如果回顾一下近百年来发生在中国的关于科学与人生的许多争论, 会发现前人已经给我们留下不少智慧的资源。 比如鲁迅, 他是文学家, 同时又是非常深刻的思想家, 他对现代中国文化转型就有许多独特的看法, 对“科学的发展观”也有超前的提示, 不妨温习一下, 从中也许能得到新的启示。 鲁迅当年提出和思考的一些问题仍然缠绕和警醒着我们, 我们应当珍惜鲁迅以及百年来中国变革中成就的思想遗产, 断不能受浮躁风气的左右, 轻易否定和抛弃这些珍贵的文化资源。



2006年 5月 11日 韩国釜山大学 校庆60周年纪念国际学术硏讨会


 

 

 


1) 《突然想到》, 《魯迅全集》 第3卷 44页, 人民文学出版社 1981年版。

2) 《科学史敎篇》, 《魯迅全集》 第1卷 35页, 人民文学出版社 1981年版。

3) 《无声的中国》, 《魯迅全集》 第4卷 13-14页, 人民文学出版社 1981年版。

4) 《科学史敎篇》, 《魯迅全集》 第1卷 35页, 人民文学出版社 1981年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