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이 1m만 상승해도 화석연료 수출입의 주요 창구인 전 세계 항구 13곳이 침수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광양도 포함됐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주요 4개 석유 수입 항구가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문가들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4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정책·연구자 네트워크인 ‘국제 지구빙하권 기후 이니셔티브(ICCI)'는 최근 발표한 ’2024 빙하권 리포트‘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ICCI는 리포트에서 기후변화에 따라 빙하가 녹는 속도가 늦춰지지 않는다면 2070년 해수면 1m 상승을 피할 수 없으며, 2100년대 초에는 해수면 상승이 3m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해수면 상승은 국제사회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위기의 가장 심각한 영향으로, 세계 지도를 다시 그릴 만큼의 큰 변화를 불러오며 세계 주요 도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폭풍 해일의 위력이 강해지고, 해안 지역의 침수가 더 빈번해지고 있다. 바닷물이 넘치면서 해안가의 기초 구조물이 부식되는 문제도 심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디언은 유조선 교통량이 많은 전 세계 주요 항구들이 입을 피해를 따져본 기존 연구 결과를 함께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 비영리 싱크탱크 ‘중국물위험(CWR)’이 지난해 5월 발표한 보고서 등 기존 연구들은 초대형 유조선이 드나드는 전 세계 주요 항구 15곳 가운데 13곳이 해수면 1m 상승에 따라 부두·석유 저장 시설·정유 시설 등 각종 인프라가 파괴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13곳에는 미국 휴스턴과 갤버스턴,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스타누라와 얀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러시아 우스트루가,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와 코르파칸, 중국 다롄·닝보저우산·상하이, 싱가포르와 함께 우리나라 광양이 포함됐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운영하는 라스타누라와 얀부 항구에서 수출된 석유는 2023년 2140억달러(약 314조원)에 이르며, 13개 항구에서 이뤄진 석유 수출은 전 세계의 20%를 차지했다.
중국물리스크 보고서는 또 광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주요 4개 석유 수입항(울산 온산·대산·광양 여수·인천)이 모두 해수면 1m 상승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에너지 안보는 빠른 해수면 상승에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분단으로 인해 사실상 섬나라와 다름없어 일본처럼 국제적인 석유 파이프라인이 없고, 모든 원유와 석유 제품의 수출입이 유조선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해수면 상승으로 입을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의미다.
주요 공급처인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쿠웨이트, UAE의 주요 항구 6곳 역시 해수면 상승에 영향을 받을 위험 지역이다. 우리나라는 이들 4개국으로부터 원유의 70%를 수입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과 일본은 해수면 상승과 연안 위협에 매우 취약한 상태인데도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가 느리다”고 꼬집었다. 이어 “에너지 안보는 단순히 석유 비축량을 늘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며, 전기차와 재생에너지의 빠른 도입이 해수면 상승에 따른 화석연료 고립 위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2년 우리나라의 화석연료 수입 총액은 1150억달러(약 169조원)인데, 이중 석유 원유가 890억달러(약 130조원)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줄이겠다고 약속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현재 정책 사이의 차이인 ‘이행 격차’가 18%에 달해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캐나다(27%), 미국(19%)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화석연료를 수출하는 길목인 항구가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타격을 입게 된다는 분석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석유 생산·수출 주체들이 손해를 감수하지 않는 이상 자기 파괴적인 거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해법은 간단하지 않다.
팸 피어슨 ICCI 이사는 가디언에 “화석연료를 나르는 항구들이 해수면 상승에 취약하며, 화석연료를 지속해서 사용하게 만드는 자기활동의 결과로 야기되는 해수면 상승에 주의해야 한다는 점이 ‘역설적’”이라고 말했다.
피어슨 이사는 “정부와 기업들이 단기적 이익에만 몰두한 나머지 해수면 상승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며 “과학적 평가로 드러난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각국 정부가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제임스 컬컴 ICCI 수석 과학 고문은 “석유 생산을 계속하는 것은 해수면 상승을 가속하는 행위와 다름없다”며 “가속화된 빙하 해빙은 이미 지난 30년간 해수면 상승 속도를 2배로 늘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계 지도자들이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기 위한 재생에너지 전환 노력을 강화하지 않는 한, 해수면 상승의 끔찍한 영향은 더 심화할 것”이라며 “이는 해안선이 있는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탈탄소화 노력을 방해하는 국가도 예외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전문가들은 하루빨리 재생에너지로 전환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현 해수면 상승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 연구기관인 ‘탄소 제로 애널리틱스(Zero Carbon Analytics)'의 머리 워디 분석가는 “온난화되는 지구에서 화석연료에 계속 의존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가 아닌 재앙의 길”이라며 “각국은 화석연료에 계속 의존하며 항구가 침수돼 공급이 끊기는 것을 감수할지, 아니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