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권선형 기자] 원자력 발전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원인가, 아니면 새로운 환경 위협인가. 노란색 방사능 경고 표지가 먼저 떠오르는 원전이 어떻게 친환경이라는 녹색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다. 탄소 배출이 적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라는 주장과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로 인해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원전의 친환경성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그린택소노미(Green Taxonomy, 어떤 산업 분야가 지속 가능한 친환경 산업인지를 구분하는 녹색 산업 분류 체계) 적용 과정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원전의 친환경성 논란은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목표 달성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유럽연합(EU)이 2022년 6월 그린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기로 결정한 것이 주요한 계기가 됐다.
원전이 친환경 에너지로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발전 과정에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발생이 현저히 낮고 △재생에너지인 태양광과 풍력보다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는 점. 그리고 △적은 양의 연료로 많은 전력 생산이 가능해 생산비용이 저렴하다는 점이 꼽힌다. 아울러 △원료인 우라늄이 상대적으로 가격 변동이 적어 안정적 전기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든다. 날씨와 관계없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는 태양광, 풍력 등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이중에서도 원전은 운영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이 EU의 그린택소노미에 포함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실제로 원전은 석탄 발전에 비해 약 68배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이는 태양광 발전과 비교해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2020년 3월 발간된 EU 전문가 그룹의 보고서는 “원전은 에너지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0에 가깝다. 원전은 기후변화 완화 목표에 잠재적으로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원전에는 ‘방사성 물질 사용’이라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발전 후 나오는 ‘사용후핵연료(SNF, Spent Nuclear Fuel)’도 인체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방사능을 방출하고 구 소련 체르노빌 원전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운영 중에도 사고가 날 수 있다. 이런 대형 재난은 광범위한 환경오염을 초래하고, 장기간에 걸쳐 생태계와 인간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원전의 건설과 해체, 우라늄 채굴과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적인 탄소 배출, 그리고 방사성 폐기물, 폐수 처리 문제는 원전의 친환경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요 근거가 된다. 환경단체들은 이러한 이유로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는 것은 '그린워싱'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논란이 이어지자 EU는 2022년 2월 원전을 활용하되 ‘위험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시각을 담아 원자력을 조건부로 그린택소노미에 포함시켰다. △신규 원전은 2045년 전까지 건설 허가를 받도록 하고 △기존 원전도 2025년부터 더 안전한 ‘사고 저항성 핵연료(ATF)’를 사용해야 하며 △2050년까지 방사성 폐기물 처분 시설을 위한 자금과 부지를 마련해 폐기물 처리 세부 계획을 세운 뒤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원자력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기후위기 속도를 늦추기 위해원전을 ‘조건부 친환경’의 범주에 포함시킨 셈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은 EU 내에서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독일, 오스트리아 등 일부 국가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 정부도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공식화했다. 환경부가 발표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개정안에 따르면 원전 관련 활동은 '녹색' 또는 '전환' 부문으로 분류됐다.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은 ‘진정한 친환경’인 녹색부문에, '원전 신규건설'과 '원전 계속운전'은 '진정한 친환경은 아니지만 탄소 중립을 위한 과도기적' 경제활동‘인 전환 부문에 포함시킨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원전을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전력원으로 여기고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조화로운 활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종용 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90% 가까이가 에너지 사용에서 나온다”며 “원자력 발전 비중이 늘면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량은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국가비전을 이행하기 위해 원전 발전 비중을 2021년 27.4%에서 2030년까지 32.4%로 늘릴 계획이다.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비중도 7.5%(2021년)에서 21.6% 이상(2030년)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신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의 발전 비중도 함께 늘리겠다는 뜻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여러 선진국들이 원전 비중을 확대하거나 원전 정책을 재검토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는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원전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과 함께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역시 '미국 우선주의' 기조와 에너지 독립, 에너지 지배력 확보라는 차원에서 원자력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취임 첫날 파리 기후변화 협정 탈퇴에 서명한 트럼프로선 예견된 정책 기조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인허가 및 안전 규제를 개선해 원전 산업의 부담을 줄이고 선진 원자로와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추진할 것으로 예측된다. 상당수 주에서 원전 이용 확대를 고려하고 있으며, 원전 지원 법안도 증가하고 있다.
영국 역시 원전을 그린택소노미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며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 비중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노후 원전을 대체하는 새로운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SMR 개발에도 투자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원전에 크게 의존하며 EU 그린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프랑스는 최근에는 이를 더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 새로운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프랑스의 에너지 자립과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제시됐다.

일본은 2023년 원자력 발전을 그린택소노미에 포함시켰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정책을 재검토했던 일본이지만, 에너지 안보와 탄소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을 다시 주요 에너지원으로 인정하는 길을 택했다.
반면 독일은 EU의 그린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키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독일은 2023년 4월 15일에 마지막 남은 3기의 원전을 모두 폐쇄하면서 완전한 탈원전을 달성했다. 이로써 1961년 첫 원전 가동 이후 62년 만에 독일의 모든 원전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22년 기준 독일의 전체 전력 생산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45%를 넘었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원전의 친환경성은 단순히 흑백논리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 주제이며, 환경 보호와 현실적인 에너지 수급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원전 기술 강국인 우리나라는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의 수주 확대와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추가적인 과제도 안고 있어 더 고민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세계적 흐름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